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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起河

起河

1898. 2. 24 ~ 1931.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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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起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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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坡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파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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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파주군 광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8년 2월 24일 경기도 파주군(坡州郡) 광탄면(廣灘面) 발랑리(發郞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7일부터 28일까지 파주군 광탄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7개 도시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었고, 파주군에서도 3월 10일 이후 만세시위가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전개하자는 취지에 적극 찬성하며, 조무쇠(曺茂釗)·이인옥(李仁玉)·남동민(南東敏)·정천화(鄭天和)·정갑석(鄭甲石)·정봉화(鄭奉和)·강흥문(康興文) 등과 함께 광탄면에서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그리고 이들과 논의해 거사일을 3월 27일로 결정하고, 만세시위는 광탄면사무소 앞에서 거행하기로 하였다. 3월 27일 조무쇠·이인옥 등과 함께 발랑리의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그리고 수백 명의 발랑리 주민들을 이끌고 동지들과 더불어 시위대의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광탄면사무소를 향해 행진하였다. 면사무소 앞에서 큰 목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만세시위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3월 28일 조무쇠·이인옥 등과 함께 다시 발랑리 주민들을 이끌고 광탄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전날보다 많은 약 1,000명의 주민들이 참여하였는데, 이날은 이웃한 조리면(條里面) 봉일천리(奉日川里) 시장의 장날이었다. 이에 기세가 오른 시위대를 지휘하여 봉일천시장을 향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봉일천시장에 나온 많은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합류하면서 시위대 규모는 2.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더욱 사기가 오른 시위대는 조리면사무소를 습격하고, 면장과 면서기 등을 장터로 끌어내 만세시위에 동참시켰다. 그러자 일제 군경이 봉일천시장으로 출동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포하며 무력으로 만세시위를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군경의 발포로 광탄면의 박원선(朴元善), 조리면의 김남산(金南山) 등 6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6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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