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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基柱

基柱

1865. 5. 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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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基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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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북청(北靑)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북청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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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6)

관련 사건

  • · 1919년 북청군 노덕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6) 1865년 5월 6일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곡동(谷洞)에서 태어났고, 북청군 노덕면(老德面) 동리(東里)에 거주하였다. 종교는 천도교이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1일 노덕면 내리(內里) 북청 읍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북청군에서 처음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된 것은 1919년 3월 8일 노덕면 내리 북청 읍내에서였다. 이날 약 250명의 군중은 북청 읍내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영덕산(靈德山)에 올라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후 같은 장소에서 진행된 3월 11일 노덕면 북청 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11일 만세시위는 북청군 천도교 조직을 통해서 준비되었다. 3월 8일 김용완(金溶玩)은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서면(西面) 한당리(閑堂里) 정기옥(鄭基玉) 집에서 최병운(崔炳運)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100장을 받고 돌아왔다. 그리고 10일 김재식(金在植) 등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주며, 11일 거행될 만세시위에 참여를 권유하였다. 한편 3월 10일 북청 천도교구실에서 교구장 김태종(金泰種)은 한명길(韓明吉)에게 북청군 천도교도들에게 3월 11일 만세시위 계획을 전달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천도교도로서 만세시위 계획을 전달받은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북청 천도교구실에서는 독립선언서가 인쇄되었다. 그러나 천도교도들의 만세시위를 이미 파악하고 있던 일제 헌병들은 3월 11일 천도교구장 김태종을 미리 검거하고 북청면 읍내의 남문·북문·서문 등을 봉쇄하며 읍민과 외부 주민들을 차단하고자 하였다. 그렇지만 사전 계획대로 북청 천도교구실에 집합한 천도교도들은 읍내로 진입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출동한 북청헌병분대 헌병들에 의해 차단당하자, 시위 군중들은 남문과 서문 밖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한편 북청 읍내에서는 천도교도와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50~60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읍내에서 조석권(趙錫權)·이욱성(李郁性)·이열성(李烈性)·조석하(趙錫河)·이학년(李鶴年)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헌병분대 앞까지 진출하였지만, 결국 일제 헌병에게 붙잡혔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고문을 못 이겨 천도교가 무기를 구입하기 위한 용도의 자금을 모집하였다고 강제 진술하였다. 그러나 경성지방법원의 신문 과정에서 이 사실에 대해 부정하였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7월(미결구류일수 중 12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미결구류일수중 60일 본형 산입)되어 옥고를 겪었다. 1920년 3월 31일 서대문감옥에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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