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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起偶

起偶

1879. 8. 5 ~ 1937. 10. 20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起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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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任實)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임실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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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임실군 둔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9년 8월 5일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둔남면(屯南面) 둔덕리(屯德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3일 둔남면 오수리(獒樹里)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둔남면 오수리 만세시위는 서울에서 고종의 장례식과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돌아온 이기송(李起松)의 주도로 계획되었다. 3월 23일 오후 2시 오수리 장터에서 약 2,000명의 시위대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이날 이기송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거나 연설을 하는 등 만세시위를 적극적으로 주도하였다. 오수장터의 만세시위가 거세지자, 오수경찰관주재소(獒樹警察官駐在所) 경찰들은 현장에 출동하여 주도자를 체포하였다. 이때 이기송·이윤의(李倫儀) 등이 주재소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그러자 남은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로 몰려가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이를 저지하던 경찰들을 응징한 후, 주재소 유리창을 깨고 기물을 파손하였다. 이에 주재소의 경찰들이 체포된 인사를 풀어주었다. 이후 시위대와 함께 둔남면사무소와 일본인 가옥·상점 등을 공격하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오후 4시경 임실경찰서(任實警察署)와 남원헌병분대(南原憲兵分隊)의 병력이 오수장터로 출동하여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만세시위 주도자로 지목되어 결국 일제 군경에게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7월 31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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