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奇安
奇安1895. 5. 2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서산군 대호지면
- · 정미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5년 5월 25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사성리(沙城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이기안(李箕安)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4일 서산군 대호지면·정미면 천의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완(姜太玩)·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결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마을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4월 4일 아침 면사무소에서 지정한 시간에 맞춰 연장을 지참하고 다른 주민들과 함께 대호지면사무소 앞에 모였다. 면장 이인정은 모인 주민들에게 사실은 도로 보수가 아니라 만세운동이니 동참하라고 호소하였다. 이 연설을 듣고 크게 공감하여 바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선두에 대형 태극기를 앞세운 시위대와 함께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천의장터로 향하였다. 가는 동안 주변의 마을 사람들이 속속 동참하여 천의장터에 도착했을 때 시위대는 이미 그 규모가 1,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이들과 함께 시장 곳곳을 행진하며 목이 터져라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 당진경찰서에서 파견한 일본 경찰들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대호지면사무소 직원 송재만 등의 지휘에 따라 다른 주민들과 천의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 이후 일제는 참여한 주민들을 색출하기 위해 홍성헌병수비대를 대호지면으로 파견하였다. 결국 일제 군경의 만세시위 참여자 검거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4월 22일 서산경찰서의 즉결심판에서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한 점이 확인되어 이른바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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