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基性
基性1894. 1. 19 ~ 1944. 8.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강진군 강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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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4년 1월 19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강진면(康津面) 남성리(南城里)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인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4일 강진군 강진면 강진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평소 일본의 한국 병합과 식민통치에 불만을 품었고,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강화회의에서 민족자결주의가 제기되자 한국 독립의 때가 이르렀다고 판단하였다. 1919년 3월 27~28일 무렵 황호경(黃鎬京)·김현봉(金炫奉)과 함께 강진면 서성리(西城里) 길가에서 강진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하고, 각자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만들기로 협의하였다. 3월 30일 강진군청 뒷산에서 다시 만나 가급적 많은 태극기를 만들기로 하고, 이날 참석한 김후식(金厚植)에게 만세시위의 취지를 설명하여 찬동을 얻었다. 3월 31일에는 자택을 방문한 황호경·김형봉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각자 최대한 많이 정서하여 가지고 오기로 약속하였다. 4월 1일에는 서울에서 독립가를 가지고 귀향한 오승남(吳承南)에게 만세시위 계획을 설명해 동의를 끌어내고, 함께 일을 담당할 것과 태극기 제작을 약속받았다. 4월 2일에는 자택에서 김현봉·황호경과 다시 만나, 4월 4일 강진장날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4월 3일에는 강진면 남포리(南浦里) 교회에서 강주형(姜宙馨)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권유해 승낙받고, 다시 박영옥(朴英玉) 집으로 가서 태극기 제작을 의뢰하였다. 밤에는 김춘석(金春錫)·오승남 등과 같이 자신의 집에서 탄산지를 이용해 독립가 20여 장을 등사하고, 다른 사람들이 제작한 태극기와 선언서 등을 받아 보관하였다. 4월 4일 오전 9시 무렵 황호경·김현봉·김춘석·오승남과 함께 자신의 집에 숨겨둔 태극기 300개, 선언서 약 70통, 독립가 약 20통을 가지고 강진시장으로 갔다. 그리고 준비한 태극기·선언서·독립가를 시장에 모여 있던 500여 명에게 나눠주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출동한 일제 군경의 발포로 만세시위는 중단되고,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4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5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다시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30일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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