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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圭寅

圭寅

1890. 4. 2 ~ 1927.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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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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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울산(蔚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울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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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관련 사건

  • · 울산군 언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8) 1890년 4월 2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상남면(上南面) 길천리(吉川里, 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의 경주 이씨 집성촌에서 상남면의 면장이던 이조영(李祚榮)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字)는 순여(舜汝)이고 호(號)는 목와(牧窩)이다. 한학을 공부하여 언양 일대 유림(儒林)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함께 울산군 언양면(彦陽面) 만세운동에 참가하고, 1920년대 언양 일대의 청년운동과 신간회(新幹會)에서 활동한 이규경(李圭庚)이 동생이다. 1919년 4월 2일 언양면 언양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3월 1일 서울에서 민족대표들에 의한 독립선언이 낭독되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발생하자 그 소식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마침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하고자 서울에 체류하던 천도교 울산교구장 김교경(金敎慶)은 만세운동을 목격하고『독립신문』과 『국민회보』를 필사하여 울산교구로 보냈다. 친척으로 독실한 천도교도였던 이규장(李圭章)은 서울로 김교경을 찾아가서 만세운동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귀향해 김교경의 전언을 천도교인과 같은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이때 최해규(崔海圭)·곽해진(郭海鎭)·유철순(兪哲淳) 등과 뜻을 같이하여 서울의 만세운동과 뜻을 같이하는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고, 거사일과 거사 장소를 4월 2일 언양시장으로 결정하였다. 한편, 3월 31일 일대를 삼엄하게 감시하고 있던 일제 경찰에 의해 최해규·곽해진·유철순 등이 검속되는 일이 생겼다. 그러자 이규장의 휘문의숙 동문 이무종(李武鐘)과 함께 거사를 예정대로 추진하기로 하고, 자신의 집을 계획 장소로 제공하여 그곳에서 태극기 42장을 제작하고 격문을 준비하였다. 1919년 4월 2일 천도교인들과 함께 장터에 와서 사람이 모여들 11시에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예고하며, 통행하는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다. 장터를 감시하던 일제 헌병이 교인들을 거동수상자로 붙잡아서 주재소로 연행하자, 김성진(金聲振)을 비롯한 다른 천도교인들이 숨겨온 태극기를 꺼내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이때 장터에 있던 언양면 주민들과 상인들을 이끌고 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700여 명의 시위대는 붙잡힌 사람들의 석방을 외치며 주재소를 향해 행진하였고,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고 헌병들을 응징하여 그들의 무기를 빼앗았다. 이에 일제 경찰과 헌병대는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만세행렬을 해산시키고 만세운동의 주도 인물들을 붙잡았다. 이 때 붙잡히지 않고 8년간 일제 경찰의 수배를 피해 도피하였다. 하지만 도피 생활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었고, 1927년 11월 19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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