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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圭完

圭完

1901. 6. 15 ~ 1961.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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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圭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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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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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안성군 원곡면
  • · 양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01년 6월 15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칠곡리(七谷里)에서 아버지 이후영과 어머니 김씨 사이에서 3남 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함께 만세운동에 참가한 이규동(李圭東)이 친형이다.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특정한 교육을 받지 않고 생업에 종사하였으며, 판결문에는 직업이 농업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9년 4월 1일 안성군의 원곡면과 양성면(陽城面) 일대에서 벌어진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원곡면과 양성면 일대 주민들은 3월 28일부터 마을 단위로 모여 뒷산 등지에서 만세를 외치고 자진 해산하는 평화적인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만세시위에 참가한 원곡면 주민들은 이덕순(李德順)·최은식(崔殷植)·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 등을 중심으로 3월 31일 만세운동을 마친 후 이튿날 재궐기하여 면사무소와 주재소 등 일제의 통치기관을 공격하고, 안성에서 일본인들을 쫓아내자고 하였다. 칠곡리에 거주하던 이유석과 홍창섭은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만세운동 계획을 전달하였다. 이때 두 사람에게 계획을 듣고, 형인 이규동과 함께 취지에 공감하여 만세시위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만세시위 당일인 4월 1일 오후 8시 다른 원곡면 주민들과 함께 원곡면 외가천리(外加川里)의 면사무소 앞에 집결하였다. 1,000여 명에 달한 군중은 이덕순과 이근수(李根洙)의 인솔 하에 횃불을 들고 만세를 외치며 동항리(東恒里)의 주재소를 향해 행진한 뒤, 오후 10시 주재소를 포위하였다. 주재소의 일제 경찰들은 만세운동에 동참하라는 권유를 받자 이를 거부하고 도주하였는데, 군중은 주재소의 외벽과 창문에 돌을 던져 파괴하였다. 이때 형 이규동과 함께 돌을 던져 주재소의 유리문을 파괴하고 내부로 돌입하였다. 최은식 등 만세운동의 주도자들은 주재소 건물을 불태우려 하였는데, 이때 정문오(鄭文五)·조경수(趙敬秀) 등과 함께 가지고 있던 성냥으로 주재소 주방에 땔감으로 쌓여 있던 솔잎에 불을 붙여 주재소 건물을 소각하였다. 이후 군중과 함께 양성우편소(陽城郵便所)로 가서 건물과 내부의 집기를 파괴하였으며, 조경수와 함께 근처에 있던 전신주를 도끼로 베어 넘어뜨린 후 불태웠다. 그리고 이규동·조경수 등 20~30명의 군중과 함께 일본인 잡화상 소토사토요테(外里與手)의 집으로 가서 문에 돌을 던져 부수고, 일본인 고리대금업자 타카 히데토모(隆秀知)의 집 대문 또한 파괴하였다. 군중과 함께 이튿날인 4월 2일 오전 4시까지 만세를 외치고, 원곡면사무소에 불을 질러 건물을 소각한 이후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는 경찰만이 아니라 용산에 주둔하던 일본 육군 병력까지 동원하여 같은 해 6월까지 두 달간 시위 참가자들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주민을 검속하였다. 일제 군경은 야간에 마을을 습격하여 주민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하고, 가옥에 불을 지르는 등 무자비한 수단을 동원하여 참가자들을 연행하였다. 만세운동 직후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붙잡혀서 재판에 회부되었고, 조사과정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일제 당국은 원곡면과 양성면의 만세운동이 식민통치에 조직적·전면적으로 항거하였다는 이유로 내란죄 성립 여부를 심의하기 위해 이 사건을 고등법원에 배당하였다. 내란죄 적용 문제를 두고 오랜 조사와 공판이 이어졌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고 다시 경성지방법원으로 관할재판소를 지정받았다. 같은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변호사들의 사법 절차 문제 지적 법정 투쟁의 결과 공소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군중을 이끌고 주재소와 우체국 전신주 등의 파괴·방화 과정을 주도하였으며, 민가에 무단침입하여 내부의 물건을 손괴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건조물 소훼, 소요죄로 징역 7년(미결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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