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奎淳
奎淳1894. 9. 7 ~ 1967. 5.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9)
관련 사건
- · 서산군 대호지면
- · 정미면 천의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9) 1894년 9월 7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마중리(馬中里, 현 당진시 대호지면 마중리)에서 태어났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서산군 대호지면·정미면(貞美面) 천의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서울과 전국 각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은 서산군에도 전달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사무소 직원들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리(里) 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서를 작성하였다. 그것은 4월 4일 면내 가호당 주민 1명씩 출석하여 도로 보수에 참여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공문서를 각 마을의 구장(區長)들에게 발부하여 주민들에게 통지하도록 하였다. 구장으로부터 연락받고 4월 4일 아침 농기구를 지참하고 다른 주민들과 함께 대호지면사무소 앞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오늘 모인 실제 목적은 독립만세운동이니 동참하라는 면장 이인정의 연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받아 보고, 이에 공감하여 바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지휘에 따라 면사무소로 앞에 집결한 600여 명의 주민들과 만세시위 대열을 갖추고, 선두에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대호지면사무소에서 약 7㎞ 떨어진 천의장터로 행진하였다. 만세시위대가 천의장터에 도착하자, 시장에 나온 정미면의 주민들까지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속속 동참하여 시위대의 규모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오후 4시 만세시위가 마무리될 무렵 천의장터로 급파된 당진경찰서(唐津警察署) 순사들의 발포로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주재소 공격에 참여하였다.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한 후, 제2차 거사를 기약하고 해산하여 귀가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직후 대호지면으로 출동한 일제의 홍성(洪城)헌병수비대의 만세운동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 검거 과정에서 붙잡혀서 서산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일제 경찰의 조사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이 인정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10월 2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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