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圭璇
圭璇1895. 6. 21 ~ 1955. 8.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수원군 성호면 오산시장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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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6) 1895년 6월 21일 경기도 진위군(振威郡) 북면(北面) 봉남리(鳳南里, 현 평택시 진위면 봉남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그 해 3월 29일 수원군(水原郡) 성호면(城湖面, 현 오산시) 오산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해 평양(平壤)·안주(安州)·의주(義州)·선천(宣川)·원산(元山)·진남포(鎭南浦)에서 일제히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천도교·개신교·불교계 대표 및 학생대표들은 독립선언서 낭독을 주도하고, 인편을 통해서 만세시위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전국 각 지역으로 전파함으로써 만세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추진하였다. 한편 수원군 장안면(長安面) 수촌리(水村里, 현 화성시) 구장이자 천도교 남양교구 순회전도사였던 백낙열(白樂烈), 팔탄면(八灘面) 고주리(古洲里)에 거주하는 김성열(金聖烈), 향남면(鄕南面, 현 향남읍) 제암리(堤岩里)의 천도교 전도사 안종후(安鍾厚) 등이 3월 1일 서울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들 중 백낙열은 수원으로 돌아온 직후 천도교 인사들과 회합하면서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백낙열은 고주리에 거주하는 천도교 지도자 김흥열(金興烈)을 찾아가서 만세시위를 준비할 인사의 파견을 요청하였다. 이에 3월 16일 김흥열은 제암리 전도사인 안종린(安鍾璘)과 안종후를 천도교 수원교구실로 파견하였다. 3월 29일 오후 4시 수원군 성호면 오산시장에서는 장날을 맞이하여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유진홍(兪鎭弘)·안동순(安東淳)·이성구(李成九)·김교신(金敬道) 등과 함께 시위대 300여 명을 이끌고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안동순은 일제 군경이 시위대의 해산을 종용했지만, 일제 군경의 저지에 굴하지 않고 시위대를 이끌고 오산역(烏山驛)으로 행진을 시도하였다. 일제 군경이 시위대를 가로막고 해산시키고자 선두에서 시위를 주도한 안동순과 유진홍에게 태극기를 내릴 것을 요구하였다.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저항하였지만, 일제 군경은 태극기를 빼앗고 안동순과 유진홍을 붙잡아서 주재소로 연행하였다. 안동순과 유진홍이 연행되자, 시위대와 함께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주재소 앞까지 전진하였다. 이에 당황한 일제 군경은 시위대 대표와 대화를 시도하였으며, 시위대 대표로 이성구·김경도(金敬道)가 일제 경찰과 담판을 시도하였다. 일제 경찰은 시위대의 압박에 굴복해서 안동순과 유진홍을 풀어주었다. 같은 날 저녁 7시 30분 5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유진홍은 면사무소 서기 심원직(沈遠稷)에게 면사무소장 유진렬(劉鎭烈)의 소재를 물어보았다. 오후 5시부터 시위가 격화되는 과정을 목격한 심원직은 유진렬을 숨겨두었기에 유진렬의 소재가 불명하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시위대는 면사무소에 돌을 던졌다. 그 와중에 유진홍과 함께 면사무소 직원을 폭행하려고 하자, 심원직은 자리를 급히 피하였다. 이성구·김경도·정규환·유진홍과 함께 평소 자신들과 행동을 같이하지 않는 면장을 죽이라고 외쳤다. 그러고는 돌을 던지면서 면사무소 건물의 유리창 등을 파손시킨 후, 면사무소장 집 앞으로 진출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 군경은 철도원호대(鐵道援護隊)와 함께 시위대 진압 및 해산을 시도하였으나 700~8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의 기세를 당해낼 수 없었다. 다음으로 시위대와 함께 우편소로 향하였다. 마침 일제 경찰이 전화를 하기 위해서 우편소로 진입을 시도하였다. 시위대는 일제 경찰이 일본 군대에 시위 사실을 전화로 알렸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이성구와 함께 우편소로 들어가서 일본 군대의 출동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화통을 부수고 그 밖에 유리창 63매와 우편소 기물을 파손시켰다. 이어서 시위대와 함께 우편소 일대에 위치한 일본인 가옥으로 가서 돌을 던지거나 몽둥이를 이용해서 집기, 유리창, 판자문을 파손시켰다. 수원군 성호면 오산시장의 만세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군경에 의해 붙잡혀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는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년 8월(미결구류일수 중 6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12월 17일 경성복심법원은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하였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은 후, 1920년 9월 1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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