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圭鳳
圭鳳1866. 10. 17 ~ 1919. 5.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청도군 대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66년 10월 17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대성면(大城面) 내호동(內湖洞, 현 청도읍 내호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한국인에게 부상을 입힌 일본인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구타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청도군 대성면 유호동(楡湖洞)에 위치한 유천시장(楡川市場) 부근은 기차역인 유천역(楡川驛)(현 상동역), 우체국, 경찰지서 등이 위치한 중심가였다. 1919년 5월 7일 이 근방의 주민 김달선(金達先)의 집에는 야마구치 토라오(山口虎雄), 미즈노 키사부로(水野喜三郞), 미츠다 사쿠지(光田作次) 등 일본인 세 명이 숙박 중이었다. 1919년 5월은 여전히 만세운동의 기운이 가시지 않고 항일의 움직임이 고조되어 가던 때였다. 이 분위기 속에서 5월 7일 일본인 세 명은 김달선의 집에서 소설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나 김달선의 집은 유천시장 근처였기 때문에 주변은 소란스러웠고 집 앞 도로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뛰놀았다. 이때 시끄러워서 소설책을 읽을 수 없다고 하면서 화를 이기지 못한 일본인 미즈노 키사부로는 작은 칼을 들고 나가 밖에서 놀고 있던 어린 아이 중 한 명을 붙잡아 입술을 베어 버렸다. 입술이 베이는 부상을 당한 어린이는 같은 동네인 내호동에 사는 이웃 이종학(李鍾學)의 동생 이종현(李鐘鉉)이었다. 미즈노의 만행을 당한 이종현의 소식은 마을에도 금세 알려졌다. 이에 격분한 이종현의 형 이종학과 같은 동네의 김도곤(金道坤)·김영곤(金永坤)·이무수(李武壽)·허곤도(許坤道) 등 약 스무 명과 함께 어린 아이에게 만행을 저지른 일본인들을 응징하기로 결의하고 김달선의 집으로 향하였다. 이때 이종학·김동식(金東植) 등과 함께 일본인들이 묵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그들을 구타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가해자 미즈노가 도망쳤지만, 마을 우물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붙잡아 함께 미즈노를 구타하였다. 그리하여 점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야마구치 토라오는 늑골 근처에 부상을 입고 미즈노는 두개골 왼편에 창상을 입었으나 전치 1개월, 전치 12일 정도의 부상이었다. 일본인을 응징한 사람들은 기뻐하며 만세를 부르면서 다시 내호동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소식을 접한 일제 경찰이 주도 인물을 잡겠다며 수사에 들어갔다. 일제 군인과 경찰 약 15명은 동네를 샅샅이 뒤지면서 불법적인 검문·검색은 물론이고, 온갖 횡포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이들의 횡포를 보고 더 이상 참지 못하여 일제 군경에 맞서서 돌을 던졌다. 그러나 맨몸으로 끝까지 저항하던 일제 군경은 총격으로 대응하였다. 이때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이후 함께 일본인 구타에 연루된 동네 청년들은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서 두 차례의 조사를 거치면서 가택침입죄, 상해죄, 소요죄 등을 적용받았다. 이때 함께 기소되었으나, 현장에서 사망하였기에 1919년 5월 29일, 공소 불가 처리 판결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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