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敎稙
敎稙1882. 7. 10 ~ 1919. 3.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양주군 화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2년 7월 10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화도면(和道面, 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月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양주군 화도면 마석우리(磨石隅里)에서 있었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제 군경의 총탄을 맞고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해서 평양(平壤)·안주(安州)·의주(義州)·선천(宣川)·원산(元山)·진남포(鎭南浦)에서 만세운동이 일제히 일어났다.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운동을 주도한 천도교, 개신교, 불교계 대표 및 학생대표들은 만세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목적으로 인편을 동원해서 만세시위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전국 각 지역으로 전파하였다. 양주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3일부터 3월 31일까지 지속되었다. 만세운동이 전개된 지역은 미금면(渼金面) 평내리(坪內里, 현 남양주시 평내동)·구리면(九里面, 현 구리시)·백석면(白石面)·화도면·사둔면(柴屯面, 현 양주면)·진건면(眞乾面, 현 남양주시 진건읍)·진접면(榛接面, 현 남양주시 진접읍)·와부면(瓦阜面, 현 남양주시 조안면)·장흥면(長興面) 등이 있다. 미금면 평내리 만세시위는 3월 13~14일에 있었다. 3월 13일 구장 이승익(李昇翼)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조선총독의 유고(諭告)를 읽어내렸다. 그 유고에는 일본과 한국의 병합은 변함이 없으며,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말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세가와의 유고에 분노한 우보현(禹輔鉉)·정기섭(丁基燮)·김영하(金永夏) 등은 마을 주민들과 합세해서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3월 18일 오후 10시 화도면 마석우리에서 만세시위가 있었다. 이달용(李達鎔)의 권유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화도면 마석우리 만세시위는 월산교회의 교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준비하였다. 200여 명의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 헌병은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키는 한편, 시위를 주도한 인사 3명을 붙잡아서 연행하였다. 그러자 1,000여 명의 시위대가 헌병주재소로 가서 검거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시위대는 구금된 인사들을 탈취하려는 과정에서 일제 헌병을 구타하였으며, 이에 일제 헌병은 시위대를 향해서 발포하였다. 일제 헌병의 발포로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그 때 일본 헌병의 발포로 함께 사망한 인사는 시위를 주도한 이달용을 비롯해서 신영희(申榮熙)·유상규(兪相奎)·손복산(孫福山)이었다. 일제 당국의 초기 기록에는 사망자를 4명으로 보고했는데, 이는 사망자 집계에서 발생한 착오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