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敎寬
敎寬1890. 4. 29 ~ 1966. 5. 1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관련 사건
- · 춘천군 사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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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8) 1890년 4월 29일 강원도 춘천군(春川郡) 사북면(史北面) 오탄리(梧灘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이만봉(李萬鳳)을 사용하였다. 30세인 1919년 3월 31일 자신의 마을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활동을 펼쳤다. 서울에서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일어난 이후 전국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마을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결심하였다. 같은 해 3월 31일 비밀리에 같은 마을에 사는 최기항(崔基恒) 집에서 김공모(金公模)·강원엽(姜元葉) 등과 만나 만세시위를 논의하였다. 이들은 다음날 4월 1일 저녁에 만세시위를 펼치기로 결의하고 구체적인 일정을 계획하였다. 먼저 구장(區長) 유휘평(柳彙平)의 집 앞에서 모여 사북면사무소 앞으로 가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마을에서 숯 공장을 하는 일본인 사토(左藤)의 집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김공모에게는 만세시위에 가담할 것을 권유하는 회문(回文)을 작성하여 이를 마을에 돌리기로 하고 각자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모으기로 결정하였다. 같은 마을에 사는 윤복균(尹復均)·윤철쇠(尹鐵釗)를 만나 만세운동 계획을 알리고 동참을 이끌어냈다. 마을 사람들을 모으기 위하여 집집마다 찾아가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면서 만세운동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4월 2일 붙잡혔다. 붙잡힌 이후 경성지방법원 춘천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고등법원에 상고하였다. 상고 취지문에 “한국민족으로서 정의(正義)와 인도(人道)에 따라 한 행동이기 때문에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해 9월 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옥고를 겪었다.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었으며 이듬해에 징역 9월로 감형되면서 1920년 6월 3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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