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光憲
光憲1895. 8. 14 ~ 1969. 5.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5년 8월 14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죽림리(竹林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는 이준봉(李俊逢)이 있다. 1919년 당시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홍성군 금마면의 만세운동은 부평리(富平里)에서 서당의 훈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민영갑(閔泳甲)의 주도로 1919년 4월 1일 전개되었다. 민영강은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파악하고, 향리에서 만세시위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민영갑은 이재만(李載萬)·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에게 서울의 만세운동 상황을 설명하고 함께 협의하여 금마면에서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4월 1일 공연이 예정되어 상당수의 주민들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이날을 만세운동의 거사일로 결정하여 공연장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4월 1일 민영갑·이재만 등은 임시 공연장에 관객으로 입장하여 만세운동을 시작할 기회를 탐색하며 연극을 관람하였다. 아직 연극이 끝나지 않은 오후 8시 민영갑 등은 객석에서 일제히 일어나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역설하였다. 이에 수십 명의 주민들이 서로 호응하여 만세시위에 동참하면서 공연장은 만세시위의 현장으로 전환되었다.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곧이어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해산을 명령하여 이날의 만세시위는 곧 해산되었으나, 붙잡힌 사람은 없었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본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이 붙잡혔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1919년 4월 19일 열린 홍성경찰서의 즉결심판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이 인정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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