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光然
光然1872. 7. 20 ~ 1939. 4.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영동군 양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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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72년 7월 20일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양산면(陽山面) 가곡리(柯谷里)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어린 시절 한학을 공부하였고,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30일 이채연(李彩然)·이관연(李觀然)·이헌주(李憲周)·이진국(李鎭國)·이상찬(李相瓚) 등 같은 가문의 친인척들과 함께 양산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양산면에서는 인천이씨 문중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났는데, 이웃한 학산면(鶴山面)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전개되었다. 만세운동이 먼저 일어난 곳은 학산면이었다. 학산면 학산리(鶴山里)의 주민 200여 명은 1919년 3월 29일 ‘독립만세’를 외치고 행진하면서 일제 통치의 말단 행정기관을 공격하는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러한 만세시위는 주변 지역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로부터 자극받은 양산면의 이흥연(李興然)과 이성주(李聖周)는 곧바로 행동을 전개하였다. 보통학교 학생이었던 이들은 이날 학산면의 만세시위로부터 자극받아 목판에 ‘독립만세’를 큰 글씨로 써서 길가에 세워 놓고,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양산면 만세운동의 직접적인 계기는 이 사건이었지만, 양산면과 학산면에서 연합으로 격렬한 만세시위가 일어난 근본 배경에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일제 당국은 이 지역 주민들에게 뽕나무의 묘목을 강제로 나눠주고 이를 책임지고 키우도록 하였고, 험준한 산악 지대로 이루어진 충북 영동과 전북 무주(茂朱)를 소백산맥과 금강(錦江)을 가로질러 남북으로 연결하는 도로 공사에 강제로 주민들을 동원하였다. 이러한 노동력 수탈은 주민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일제의 수탈이었고 이 지역 만세시위의 근본적인 배경이 되었다. 일제의 노동력 수탈에 대한 직접적인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격렬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흥연과 이성주 두 학생이 일제 경찰에 연행된 다음날인 3월 30일, 이 소식을 접한 이채연·이관연·이헌주 등은 서로 협의하여 어린 학생들을 구출하고 양산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한 후, 행동에 나섰다. 이날은 대부분의 주민들이 영동-무주 간 도로 공사에 강제 동원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곧바로 공사 현장으로 가서 주민들을 설득하였다. 이때 다른 주민들과 함께 도로 공사 현장에 동원되어 강제로 노역을 하던 중이었다. 같은 마을에서 거주할 뿐만 아니라, 친척이었던 이채연·이관연 등으로부터 만세운동에 나설 것을 호소받았다. 이채연 등이 주장하는 만세운동의 취지에 크게 공감하여 즉시 공사 현장에 함께 있었던 2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 대열에 참여하였다. 이채연·이관연 등의 지휘에 따라 ‘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며 경찰주재소를 향해 행진하였다. 양산면의 만세시위 대열은 그 날 오후 2시 서산리의 경찰주재소 앞에 도착하였다. 이채연·이관연 등의 지휘에 따라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이흥연과 이성주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일제 경찰이 두 학생의 석방을 거부하는 행태에 분노하여 경찰주재소 공격을 주도하였다. 동료들과 함께 만세시위대의 선두에서 주재소를 향해 앞장서서 돌을 던지고, 다른 주민들에게도 주재소를 공격할 것을 독려하였다.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고,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 이흥연과 이성주를 구출하였다. 그리고 주재소 내부의 전화기 등 일제 경찰의 집기와 시설을 파괴하고, 일제 경찰들도 ‘독립만세’를 부르게 하는 등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양산면의 만세시위대에 의해 경찰주재소가 공격받는 격렬한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는 지원 병력을 파견하여 만세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였다. 이로 인해 수십 명의 주민들이 부상당하였고, 이 과정에서 이상찬·이진국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조사 과정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1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점이 인정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해 10월 13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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