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영
尹周榮1897. 1. 27 ~ 1938. 11.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충주군 신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7년 1월 27일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신니면(薪尼面) 신청리(新淸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윤탁영(尹卓榮)이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1일 신니면 용원리(龍院里) 용원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희갑(李喜甲)과 이강렴(李康濂)은 3월 1일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3월 31일 신니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킬 생각으로 평소 교류관계가 깊었던 지인들을 소집하였다. 이때 은경옥(慇慶玉)·손승억(孫承億)·이강호(李康滈)·윤무영(尹務榮)·김은배(金殷培) 등과 함께 참석하였다. 이들과 함께 신니면 만세시위 계획을 논의하고, 의견을 교환하였다. 그리고 많은 주민들이 모이는 용원장터 장날인 4월 1일에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결의하고, 역할을 분담하였다. 대표자를 자처하는 이희갑·이강렴·은경옥은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주민들에게 고취시키는 내용의 독립선언서 7통을 작성하였고, 손승억이 이것을 등사하였다. 이때 이강호·윤무영·김은배와 함께 태극기 제작을 맡았고, 은경옥·이희갑·이강렴이 독립선언서 작성을 마치고 합류해 더불어 태극기 9본을 제작하였다. 4월 1일 오전 11시 30분 은경옥이 먼저 신니면 신정리(新井里)에 위치한 용명서당(龍明書當)으로 가서 학생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려고 시도하였으나, 일본인 선생의 제지로 실패하였다. 이후 용원장터에서 은경옥·이희갑·이강렴·이강호 등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어서 동지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호소하였다. 이런 모습에 공감한 200여 명의 주민들이 ‘독립만세’를 따라 외치면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후 시위대를 이끌고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5월 13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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