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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섭

尹周燮

1887. 10. 25 ~ 1957.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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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윤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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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金浦)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김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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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김포군 고촌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87년 10월 25일 경기도 김포군(金浦郡) 고촌면(高村面) 신곡리(新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4일 김포군 고촌면 신곡리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해서 평양(平壤)·안주(安州)·의주(義州)·선천(宣川)·원산(元山)·진남포(鎭南浦)에서 독립선언과 만세시위가 일제히 일어났다. 김포 지역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2일부터 3월 29일까지 양촌면(陽村面)·고촌면·하성면(霞城面)·월곶면(月串面)에서 진행되었다. 3월 1일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는 소식이 김포군 고촌면에도 전해졌다. 당시 고촌면 신곡리에는 3월 1일 중동고등보통학교(中東高等普通學校) 재학생으로 서울의 만세시위에 참여한 김정의(金正義)가 일제 군경의 검거를 피해서 고향으로 내려와 있었다. 김정의는 신곡리에서 농업를 짓던 청년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김정국(金正國)·윤재영(尹在英)·이흥돌(李興乭)·김남산(金南山)과 함께 고촌면에서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24일 김정국과 윤재영의 권유로 신곡리 뒷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김정국과 윤재영이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뒷산에 모인 5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일제 군경의 탄압에서 불구하고 고촌면 만세시위는 이튿날인 3월 25일에도 지속되었다. 김정의는 본인의 집에서 김남산·이흥돌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이어서 이상윤(李上允) 집 앞 마당에 50여 명의 주민을 집결시켰다. 김남산과 이흥돌이 태극기를 번갈아 들면서 선두에 서서 행진하였다. 김정국을 비롯한 시위대는 일제 군경의 탄압에서 불구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후 신곡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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