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근
尹鍾根1888. 2. 29 ~ 1959. 4.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김포군 월곶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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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8년 2월 29일 경기도 김포군(金浦郡) 월곶면(月串面) 조강리(祖江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고용인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 해 3월 28·29일 김포군 월곶면 군하리(郡下里)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김포군에서는 1919년 3월 22일 월곶면 군하리 장터에서의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3월 29일까지 양촌면(陽村面)·고촌면(高村面)·하성면(霞城面)·월곶면 일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3월 22일 월곶면 군하리 장날 전개되었던 만세시위는 고양리(高陽里)에 사는 성태영(成泰永), 군하리에 사는 백일환(白日煥), 성서학교(聖書學校)에 재학 중이던 이살눔[이살로미(李撒路美)] 등이 주도하였다. 독립선언서를 받은 성태영·박용희(朴容羲)·조남윤(趙南潤)·최복석(崔復錫) 등은 비밀리에 만세시위를 함께 주도할 동지들을 규합하고,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3월 22일 성태영은 장날 군하리 장터에 모인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은 통진향교(공자묘)로 모이라고 외쳤다. 백일환·이살눔·오복영 등은 시위대를 이끌고 통진향교·월곶면사무소·군하리경찰관주재소 등을 행진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특히 면사무소에 도착한 시위대는 면서기 4인에게 ‘독립만세’를 외치도록 하였다. 이어서 성태영이 면사무소에서 독립의 당위성을 연설하고자 하였다. 그러자 출동한 일제 군경이 성태영을 끌어내리려고 하였고, 이를 본 시위대가 일제 군경의 행동을 저지하며 무기를 빼앗기도 하였다. 4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주재소를 포위하여 조선인 순사보 등을 구타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다시 면사무소로 가서 면서기 등에게 만세삼창을 요구하자, 4명이 차례로 만세를 불렀다. 3월 28일 조강리 당인표(唐寅杓)의 집에서 최우석(崔禹錫)·조남윤과 함께 모여서 3월 29일 오전 11시에 다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알리는 격문을 월곶면 일대에 부착하였다. 그리고 정인교(鄭仁敎)·최우석과 함께 만세시위에 함께 할 사람들을 모집하였다. 그 날 밤에는 정인교·민창식(閔昌植)과 함께 군하리 뒷산인 함반산(含飯山) 정상에 올라가서 횃불을 올리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다음날인 3월 29일 11시에는 4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대를 인솔하여 통진향교와 면사무소 등을 행진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군하리 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한 이유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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