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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훈

尹鼎勳

1881. 11. 24 ~ 1921.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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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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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報恩)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보은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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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보은군 내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1년 11월 24일 충청북도 보은군(報恩郡) 내북면(內北面) 서지리(西枝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8일 서지리의 주민들을 규합하여 ‘갓빈데산’에서 횃불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봉기하던 시기에 보은군의 내북면에서는 4월 8일 산성리(山城里)와 서지리의 2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횃불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용기(李龍基)가 산성리의 서쪽 뒤편 언덕에서, 구열조(具悅祖)가 서지리의 성산(城山)에서 각각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할 때 ‘갓빈데산’에서 횃불만세시위를 이끌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그동안 기다리던 한국 독립이 선언되었고, 이에 호응하여 전국 각지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인지하였다. 이러한 취지에 크게 공감하고 나라의 독립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마을에서 만세시위를 펼치기로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8일 밤 같은 마을 주민에게 전국 각지에서 독립을 위해 ‘독립만세’를 큰 목소리로 외치는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전파하고,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불만과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같은 마을의 윤홍훈(尹洪勳) 등 8명의 주민들이 크게 공감하여 동참하기로 결의하였다. 즉시 이들을 규합해 주민들이 통칭 ‘갓빈데산’으로 부르지만 공식 명칭이 없는 마을의 무명산(無名山)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횃불을 밝히고,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는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날 밤 같은 서지리에 거주하는 구열조는 주민에게 전국적인 만세운동의 상황을 알리고,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이러한 호소에 공감한 김성복(金聖福)·김수려(金秀麗) 등 10여 명의 주민들도 구열조와 함께 성산(城山)으로 올라가, 역시 횃불만세시위를 밤 늦게까지 펼쳤다. 같은 날 산성리에서도 이용기의 주도로 서지리와 비슷하게 횃불만세운동이 거행되었다. 이날 저녁 이용기는 마을 사람들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공감한 주민 20여 명이 동참하자, 이들을 규합하여 산성리의 서쪽 뒤편 언덕으로 올라가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처럼 4월 8일 내북면의 서지리와 산성리 등 3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된 횃불만세시위는 주도자들 사이에 사전 협의가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구열조·이용기와 함께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 일로 1919년 5월 6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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