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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문

尹在文

186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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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윤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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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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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안동군 안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0)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안동면(安東面) 신세동(新世洞)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919년 당시 55세이므로 1865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안동군 안동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안동군 안동면 만세운동은 안동교회 김병우(金炳宇)와 김영옥(金泳玉)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계열과 유후직(柳后稷)·송기식(宋基植) 중심의 유림계열이 연합하여 일으켰다. 3월 18일 용무를 보기 위하여 가까운 안동군 안동면 장터로 향하였다. 정오 무렵 ‘대한독립만세’의 함성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든 30여 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삼산동(三山洞) 방면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들이 남문(南門)과 북문통(北門通)에서 시위를 전개하고 있을 때, 또 한 무리의 시위대가 동문통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합류하였다. 일시에 쏟아지듯 나온 시위대로 사방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되자 자연스럽게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시위대에 섞여 주동자들의 선창에 ‘독립만세’를 연호하며 장터와 거리를 행진하였다. 그러나 독립만세소리에 출동한 일제 경찰이 군중들을 총칼로 위협하고 주도 인물 14명을 체포하였다. 오후 6시 경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는 만세시위가 펼쳐지자 이에 동참하여 시가를 행진하였다. 이번에도 여러 명의 일제 경찰이 달려와 시위대를 향하여 칼을 휘두르면서 위협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러 명이 부상을 입고 주도 인물 2명이 체포되었으며, 시위는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3월 19일 새벽 1시 경 2,500여 명의 주민들이 시위대에 참여하면서 군중들의 사기는 점점 더 높아졌다. 시위대는 군청과 경찰서,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으로 몰려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펼쳤다. 시위대와 함께 일제 경찰에 맞서 투석전을 벌였으나 이제 군경이 발포를 시작하자 부득이 해산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1919년 3월 21일 만세시위에 참여한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같은 해 4월 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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