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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수

尹章守

1895. 1. 6 ~ 1958.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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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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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동래(東萊)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동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동래군 구포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95년 1월 6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구포면(龜浦面) 화명리(華明里, 현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윤장수(尹張守)를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필묵상(筆墨商)으로 일하였으며, 3월 29일 경상남도 동래군 구포면 구포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동래군 구포면 만세운동은 3월 중순 화명리 출신으로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학생이던 양봉근(楊奉根)이 내려와 구포면사무소 서기인 임봉래(林鳳來)와 사립 화명학교 교사인 윤경(尹涇) 등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양봉근은 각지에서 전개되는 만세운동의 소식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건넸고, 구포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권유하였다. 이들은 3월 27일과 28일 논의를 거듭하고, 구포 장날인 3월 29일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만세운동에 사용될 독립선언서와 커다란 태극기 및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현수막도 만들었다. 3월 29일 정오 구포시장에 집결한 장꾼 1,000여 명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힘껏 외쳤다. 박덕홍(朴德弘)은 큰 태극기를 흔들었고, 안화중(安華重)은 군중을 향해 “시장을 폐문하고 시위에 적극 가담하라”라고 호소하면서 시위대를 이끌었다. 시위 도중 10여 명의 주도자가 일제 군경에 의해 체포되어 구포경찰관주재소(龜浦警察官駐在所)에 구금되자, 임봉래(林鳳來)·윤정은(尹正殷) 등과 함께 1,200여 명의 군중을 지휘하면서 주재소로 돌진하였다. 동시에 주도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주먹과 몽둥이로 일제 경찰관 주재소 유리창을 파괴하여 아수라장이 되었다. 시위 도중 많은 군중이 일제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중상을 입었고, 43명의 주도자가 검거되었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7월 19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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