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하
尹寅夏1853. 2. 2 ~ 1928. 3.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1919년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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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1853년 2월 2일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남하면(南下面) 양항리(梁項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경여(敬汝), 호는 심산(心山)이다. 영남 유림의 대표적 인물인 이진상(李震相)의 문하이며, 사촌지간이었던 유림 윤주하(尹胄夏)로부터 한학(漢學)을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유림들이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한 「독립청원서」, 세칭 「파리장서(巴里長書)」에 유림 대표 137명 중 한사람으로 서명하였다. 1919년 전국의 유림은 한국의 독립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진정한 의사를 파리강화회의에 전하기로 결의하고, 한자로 총 2,674자로 이루어진 장문의 「독립청원서」를 작성하였다. 그 내용은 일제의 ‘을미사변’과 고종 ‘독살’, 그리고 일본의 한국주권의 찬탈과정을 폭로하고 한국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한 것이었다. 유림은 김창숙(金昌淑)을 파리로 직접 파견하여 이 「독립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고자 하였으나 직접 가지 못하고, 이 문서를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의 대표로 파리에 파견된 김규식(金奎植)에게 송달하였으며, 국내의 각 향교에도 우송되었다. 영남지역에서는 곽종석(郭鍾錫)의 학맥을 중심으로 독립청원운동이 전파되었는데, 곽종석은 이진상의 제자로 윤주하와 동문수학한 막역한 사이였다. 윤인하는 스승인 윤주하를 통해 독립청원운동의 내용과 「독립청원서」를 전달 받고, 이에 동의하여 유림의 「독립청원서」, 즉 「파리장서」에 유림 대표 137명 중 한사람으로 서명하였다. 1919년 4월 12일 경상북도 상주(尙州)에서 독립청원에 서명한 송회근(宋晦根)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조사받는 과정에서 「파리장서」 사건이 발각되었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미결수로 3개월 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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