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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보

尹仁甫

1878. 4. 9 ~ 1951.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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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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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淸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청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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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청주군 미원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8년 4월 9일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미원면(米院面) 용곡리(龍谷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대신리(大新里)에 거주하였으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청주군 미원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30일부터 31일까지 전개된 청주군 미원면 만세운동은 청주군 내에서 전개된 가장 큰 규모의 만세시위였다. 이틀 동안 대규모 만세시위가 전개되었으며, 주도 세력도 날짜별로 다르다. 3월 30일의 만세운동은 신경구(申敬求)·이용실(李容實)·이수란(李水蘭) 등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3월 30일 오전 미원장터 인근에 소재한 김태복(金泰復)의 자택에서 만나 만세운동의 결의를 다지고, 오후 2시 경부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신봉휴(申鳳休)가 만든 태극기를 흔들며, 신경구 등은 미원장터의 사거리에서 주민들에게 독립의 취지를 힘주어 연설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신경구 등의 연설과 ‘대한독립만세’의 외침을 듣고,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에 동참하라는 호소에 크게 공감하여 다른 1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신경구·이용실·이수란 등의 지휘에 따라 만세시위대와 함께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곧이어 장날의 만세시위를 경계 중이던 미원면 헌병주재소의 헌병 8명이 출동하여 만세시위의 즉각 해산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미 기세가 오른 만세시위대는 총검으로 위협하는 일제 헌병들의 해산 명령을 무시하고 계속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결연한 독립만세시위의 모습을 보고 더욱 많은 주민들이 호응하여 속속 만세시위에 합류하였다. 다수의 시위대에 중과부적이었던 일제 헌병들은 만세시위의 즉각 해산은 포기하고, 시위대를 지휘하고 있던 신경구를 강제로 연행하여 주재소에 유치하였다. 그러나 일제 헌병대의 이같은 행동은 오히려 시위대를 더욱 자극하였다. 연행된 신경구를 대신하여 이용실이 만세시위대를 지휘하였다. 일제 헌병의 탄압에 분노한 1,5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헌병주재소로 쫓아가서 신경구의 석방을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신경구를 석방하라”는 시위대의 요구에 주재소장이 불응함에, 이용실과 함께 시위대를 선두에서 이끌던 이수란이 주재소로 쳐들어가 자신은 고종의 친족이라고 호언하면서 옷을 풀어헤치고 죽일테면 죽여보라고 호통치며 소지한 담뱃대를 휘둘러 주재소장을 위협하였다. 이러한 이수란의 행동에 고무받아 성규원(成奎垣)과 함께 주재소로 들어갔다. 성규원이 일제 헌병들에게 “어째서 시위 군중을 살상하는가”라고 거세게 항의하자, 총검으로 성규원을 위협하는 일제 헌병에게 맨손으로 대들어 대검을 빼앗고, 신경구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러나 주재소장은 연행자 석방 요구에 불응하고, 주재소에 들어와 주도자의 체포를 규탄하는 이수란·성규원 등과 함께 체포하려 하였다. 주재소 앞에서 만세시위대를 지휘하며 안의 상황을 주시하던 이용실은 일제 헌병의 강압적 태도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만세시위대를 향해 “주재소를 파괴하라”, “주재소장을 죽여라”라고 외치고, 솔선하여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에 이성호(李聖浩)·이서구(李瑞九)·서정렬(徐正烈)·신성휴(申聖休)·성규원·김진환 등과 함께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져 주재소의 기물을 파괴하고, 주재소장과 일제 헌병을 구타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만세시위의 양상이 격렬해지자, 일제는 청주에서 지원 병력을 미원면으로 급파하였다. 청주의 헌병들은 미원면에 도착하자마자, 미원면의 헌병들과 함께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하였다. 이로 인해 만세시위대 중 1명이 사망하고, 3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비극이 벌어지면서 시위대가 해산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에 붙잡혔다. 일제 헌병의 조사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이 인정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5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년을 받았다.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6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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