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점동
權點同1902. 6. 5 ~ 1931. 12.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영산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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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902년 6월 5일 경상남도 창녕군(昌寧郡) 영산면(靈山面) 성내리(城內里)에서 태어났다. 영산 지역 신교육의 모체인 영산보통학교 4회 졸업생으로, 3·1운동 당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19년 3·1운동의 상황을 접하고 귀향한 구남회(具男會)는 독립선언문과 독립신문을 전달할 책임을 맡아 지역의 청년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이에 적극 찬동하여 구남회·남경명(南景明)·장정수(張正秀)·김추은(金秋銀) 등과 함께 3월 13일을 거사 일로 정하고 비밀리에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는 등 시위 준비를 하였다. 3월 12일 밤 구남회 등과 함께 결사단(決死團)을 조직하여 독립선언서의 공약 삼장을 내용으로 하는 선서문을 채택하고, 개춘회(開春會) 형식을 빌려 시위를 시작하는 구체적인 투쟁 방법을 논의하였다. 3월 13일 오후 1시경 결사단원들과 함께 영산면 남산(南山)에 집결하여 결사 항쟁 취지의 결사단원 맹세서(決死團員盟誓書)에 서명하고, 오후 2시경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휘두르며 농악대를 앞세우고 대한 독립 만세와 전진가(前進歌)를 부르며 시위 행진을 시작하였다. 저녁이 되자 시위대는 다음날을 기약하며 자진 해산하였으나, 이때 창녕경찰서에서 경관 1개 대대를 영산으로 급파하여 구남회·장정수·김추은 등 주도자를 체포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나머지 결사대원과 함께 구금된 동지를 탈환하기로 결의하고 남산에 재차 집결하였다. 저녁 8시경 모여든 많은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창녕경찰서로 행진하며 만세 시위를 벌였으나, 경찰에 결사대원 전원이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원심검사가 항소하여,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개월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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