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석
李錦錫1893. 5. 1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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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족장(201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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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7) 1893년 5월 15일 함경남도 안변군(安邊郡) 문산면(文山面) 통천리(通川里)에서 태어났다. 1917년 (음)12월 1일부터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웅탄면(熊灘面) 평리(坪里) 소재 강경하(姜景夏)의 서당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서당 학생 홍석범(洪錫範) 등 9~14세의 아동 6명에게 창가 책에 있는 「운동가(運動歌)」,「감동가(感動歌)」등을 들려주며 학생들의 항일정신과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운동가」는 “대한민국만세, 부강기업은 오로지 국민교육에 있고 청년학도는 용감한 정신으로 활동하러 태극기 아래 모이자”라는 내용이었으며, 「감동가」는 “4천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은 이제 그 땅과 집을 빼앗기고 강산은 빛을 잃고 해와 달은 빛을 잃었다. 청년 각자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을 잊지 말고 국난을 회복하여 독립의 깃발을 세워 자유의 종을 울리고 부모의 근심을 안심시켜 대한반도에 광명한 천지의 나라를 건설하자. 영웅들이여!”라는 가사였다. 이러한 창가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며 일제의 부당한 통치에 대해 알게 하고, 독립의 필요성에 대해서 역설하였다. 또한 1917년 (음)11월 무렵 강원도 평강군(平康郡) 고삽면(高揷面) 북평리(北坪里)에서 김우현(金右鉉)으로부터 어업용 뇌관(雷管) 7개와 도화선(導火線) 7척 6촌, 다이너마이트 2개 등의 화약류를 건네받아 평리에 있는 자택에 숨겨두었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8년 9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총포화약류단속령시행규칙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즉각 항소하였으나, 그해 10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1919년 10월 23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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