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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斗杓

斗杓

1919. 6. 28 ~ 2005.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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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斗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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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경성(鏡城)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경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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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여명회
  • · 우리독립운동클럽
  • · 의열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9년 6월 28일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 주을면(朱乙面) 온천리(溫川里)에서 이병익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마을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1930년 주을보통학교(朱乙普通學校)에 입학하였다. 일본에서 활동할 때에는 중산정구(中山靖久)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1933년 주을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학우들과 연합하여 반일만월일심광명단(反日滿月一心光明團)을 조직하고 스스로 단장이 되었다. 소년 시절이었음에도 일제에 대한 저항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여러 방책들을 연구하고 실행하였다. 이후 각종 문학서적과 사회과학 서적을 탐닉하고 일본으로 갈 결심을 하였다. 일본 생활 초기에는 신문 배달 일을 하면서 한국인에 대한 차별을 절실하게 느꼈으며 독립을 위해서 힘을 모을 방안을 고심하였다. 1940년 10월 도쿄(東京)에 있는 한국인 비밀결사 학생단체인 여명회(黎明會)에 가입하여 조직의 연락책으로 활동하였다. 1941년 4월경 동경 시바구(芝區) 다무라마치(田村町)에 있는 신문직배소에서 현창석(玄昌碩)·채용석(蔡用錫) 등과 함께 모임을 하며 ‘우리조선독립운동클럽’이라는 조직을 결성하였다. 이 조직은 여명회와 연대하며 일본의 패전할 경우 각지에서 봉기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이처럼 독립운동의 구체적인 방안과 더불어 국내로의 확산 방법을 고심하였다. 1942년 6월경 신용갑(申龍甲)을 회원으로 영입하고 신용갑으로 하여금 후일 치바(千葉)에서 항일학생조직을 결성하여 활동하게 하였다. 1942년 귀국한 후에도 함북 경성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봉남(金鳳南)·이문빈(李文彬)·김윤조(金允祚) 등을 규합하여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하였다. 이들과 함께 반전과 항일을 표방하며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이 항일운동을 하던 중 1942년 10월 28일 일본경시청 형사에게 붙잡혔다. 1943년 7월 도쿄형사지방재판소 검사국으로 송치되었고, 1944년 8월 금고 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45년 광복으로 풀려나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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