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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東甫

東甫

1906. 6. 5 ~ 1943.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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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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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영흥(永興)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영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죠세이지구)
  • · 일본공산당
  • · 노동계급사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1906년 6월 5일 함경남도 영흥군(永興郡) 억기면(億岐面) 용호리(龍湖里)에서 태어났다. 진흥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29년 7월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다. 1932년 2월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日本勞動組合全國協議會)에서 활동하였다. 이 조합은 1928년에 결성된 일본 공산당계 노동조합의 전국 조직으로 재일 한국인들의 비율이 과반수 이상이었다. 자연스럽게 한국인 노동자들이 각 산업별 노조의 간부가 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여기에서 토목건축노동조합 죠세이(城西)지구 닛포리(日暮里)분회 결성에 참여하여 책임자가 되었다. 이 조합에서 한인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노동운동과 항일운동을 전개하면서 특히 죠세이지구 토목건축노동조합 재정부를 맡아 담당하였다. 1932년 4월 일본공산당(日本共産黨)에 입당하여 가두반에 배속되었으며, 그 해 5월 노동계급사(勞動階級社)에 가입하여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2월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재건운동을 벌이다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5년 3월 12일 도쿄(東京)공소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36년 7월 17일 풀려났으며, 아라카와구(荒川區) 미카와시마(三河島)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중심으로 적색스포츠단을 결성하는 등 노동운동 이외의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동을 이어갔다. 1938년 6월 29일 인민전선(人民戰線)의 관계자로 또다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르던 중 1943년 12월 22일 평양형무소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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