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大敎
大敎1925. 2. 15 ~ 1944. 2.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충성회(오사카)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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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8) 1925년 2월 15일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하리면(下里面) 은산리(殷山里)에서 태어났다. 일본 오사카(大阪)로 건너가 호우도구공학교(報德工學校)에 재학하였다. 호우도구공학교 재학 중, 일제의 지배 정책 때문에 민족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독립운동을 모색하기로 하였다. 1941년 9월부터 전영수(田永秀)와 교류하며 “조선 민중이 일본의 차별과 압박을 받아 비참한 환경에 있는 현황을 폭로하고, 이를 논란 비방하여 이들의 민족의식 유발 앙양에 노력하는 한편 조선민족 해방을 위하여 우리들 청년학생이 단결하고 급속히 조선독립을 달성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듣고 이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1941년 9월 이후 전영수와 함께 약 10명에 이르는 동지들을 규합해 독립운동을 추진할 중심적 조직으로서 충성회(忠誠會)라는 민족주의적 단체를 결성하였다. 1942년 12월경까지 30여 차례에 걸쳐 회합하여 충성회를 중심으로 “징병제를 독립운동으로 전환시킬 것, 고향 후배들에게 시국문제와 사회문제를 강의하여 민족정신을 계몽시킬 것, 친일 단체인 협화회와 청년단에 들어가 민족의식을 유발케 할 것, 미국 비행기가 내습할 때가 독립운동을 달성할 기회임을 인식할 것, 안중근(安重根)과 같은 선열을 현창할 것, 조선 총독정치의 결함과 각종 차별 문제를 폭로하여 항일적 민족감정을 앙양시킬 것, 비밀기록류의 기재는 경찰로부터 검거될 우려가 있음으로 극력 주의할 것” 등을 논의하였다. 1943년 2월 26일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44년 2월 15일 옥고의 여독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방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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