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琦淳
琦淳1918. 3. 19 ~ 1999. 2.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독립결사대(도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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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18년 3월 19일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파천면(巴川面) 신기리(新基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이명수(李明秀), 천애(天涯)가 있고,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벽산명수(碧山明秀)를 썼다.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에 매진하였으며, 주오대학(中央大學) 법학과에 진학하였다. 1941년 4월 무렵 독립운동에 합류하였다. 유학생 동료들과 의기투합하여 3인에서 9인조의 독립결사대(獨立決死隊)를 구성한 뒤, 상호 간 민족의식 함양과 단결을 도모하는 한편, 일제의 지배정책에 대항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일본 곳곳에 산재한 한인 마을인 ‘고려촌’을 돌며 주민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교육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유학생과 한국인 유력자를 찾아가 독립운동에 나설 것을 설득하는 등 동지 규합과 세력 확장에 진력하였다. 1942년 한국인 청년에 대한 징병제 적용에 앞서 일제가 학도지원병 제도를 만들어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지원을 강요하자, 동포들에게 이 제도의 허상과 전쟁의 실상을 고발하는 한편, 지원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이 일로 1943년 8월 자택에서 일본군 헌병대에 붙잡혔으며, 도쿄(東京)구치소에서 고초를 겪었다. 같은 해 11월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도쿄형사지방재판소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다시 스가모(巣鴨)형무소에 구금된 채 약 1년여에 걸친 예심재판을 받았다. 그러던 중 모진 고문과 열악한 형무소 생활로 정신질환을 얻었다. 1944년 10월 가석방으로 풀려났으나, 이후에도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김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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