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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光信

光信

1888 ~ 1912.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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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光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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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淳昌)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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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후기의병(양윤숙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6)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6)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호계면(虎溪面, 현 인계면) 쌍암리(雙巖里) 출신이다. 일제 측 판결문에 따르면, 1910년 당시 23세로 1888년생으로 추정된다. 1909년 양윤숙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광무황제(고종)가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한 일본의 압력으로 강제로 퇴위 당하였다. 그리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체결 이후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서울과 원주(原州)의 군인들의 봉기를 시작으로 정미의병(丁未義兵)의 항쟁이 전개되었다. 정미의병 항쟁의 후반기인 1909년 2월 10일부터 1909년 9월 6일까지 동향인 순창 출신의 양윤숙(楊允淑)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순창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12월 1일에는 동료 의병 옹권삼(雍權三)과 함께 전북 남원군(南原郡) 초랑면(草郞面) 강석동(江石洞, 현 남원시 대강면 강석리)에 거주하는 장기홍(張基洪)에게 엽전 300냥의 군자금을 조달하려 하였다. 다음 날인 12월 2일에는 전북 순창군 유등면(柳等面) 유촌리(柳村里)에 거주하는 서성재(徐成在)가 그 며느리와 간통한 것을 꾸짖고 엽전 200냥의 군자금 차출을 요구하기도 하였으나 군자금을 획득하지 못하였다. 같은 곳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서 헌병 조장 고마노 요리이치(駒野依市)에게 조사를 받았다. 1910년 1월 7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재물협편(財物脅騙) 및 폭동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1912년 11월 20일 전주형무소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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