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丙旭
丙旭1897. 1. 17 ~ 1978. 10. 2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한단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독립장(196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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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1968) 1897년 1월 17일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대덕면(大德面) 소산리(小山里)에서 태어났다. 호는 강재(强齋)이다. 아버지는 이경수(李敬秀), 동생은 항일운동가 이병묵(李丙黙)이다. 일제 강점 이후 가족과 함께 남만주(南滿洲)로 이주하였다. 1922년경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이하 통의부)에 가입하고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광한단(光韓團) 단원이던 홍경식(洪景植)과 함께 권총과 폭탄을 국내로 운반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던 중 1921년 1월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출옥 이후에는 다시 남만주로 이동하여 통의부에서 활동하였다. 통의부 총장 김동삼(金東三)의 지시를 받고 1924년 9월 초 김장식(金章植)과 함께 남만주 싱징현(興京縣)을 출발하여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로 들어왔다. 10월경 서울에 도착하여 효제동(孝悌洞)에 활동 근거지를 마련하고 현익철(玄益哲)을 만나 활동 계획을 논의하였다. 유한기(柳漢基)의 집에서 홍경식에게 김동삼의 밀서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공채증서(公債證券) 1,000 원권 6장과 무기를 전달하였다. 이들은 협의를 거쳐 서울에서 통의부 지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하였다. 1924년 10월 말경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홍경식·유한기·박정양(朴貞陽)과 함께 지부 설립 계획을 구체적으로 협의하고 이탁(李沰)을 지부장으로 하는 통의부 경성지부(京城支部)를 조직하였다. 홍경식·유한기·박정양과 함께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고 동지를 규합하여 친일 행위자와 일제 고관을 처단하고 조선총독부 등 일제 기관을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통의부 경성지부 명의로 된 독립운동자금을 후원하라는 문서를 작성하여 권총으로 무장하고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나섰다. 1924년 9월 27일 서울 창성동(昌成洞) 안도(安濤)의 집에 가서 독립운동자금 38원을 모집하였다. 또한 같은 해 10월 2일부터 11월 7일까지 3회에 걸쳐 안도에게 독립운동자금 700원을 모집하였다. 1924년 10월 10일과 10월 26일 전남 담양군 창평면(昌平面) 삼천리(三川里) 고하주(高廈柱)에게 독립운동자금 3만 원, 고광일(高光馹)에게 2만 원을 후원하라는 서신을 보냈다. 그 해 10월 27일에는 충북 진천군(鎭川郡) 진천면(鎭川面) 읍내리(邑內里) 박승구(朴勝龜)에게 독립운동자금 5,000 원, 충남 논산군(論山郡) 광석면(光石面) 신당리(新堂里) 윤희중(尹希重)에게 1만 원을 의연하라는 서신을 보냈다. 1924년 10월 12일 오후 8시경 경성부 효자동(孝子洞) 남작(男爵) 김교신(金敎莘)의 집에서 독립운동자금을 요구하고, 10월 20일 105원을 모집하였다. 김교신은 김홍집(金弘集)의 조카인 김춘희(金春熙)의 아들이다. 1924년 10월 14일 오전 9시경 서울 적선동(積善洞) 이경세(李慶世)의 집에서 독립운동자금 200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달 24일에도 이경세에게 자금 100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11월 3일 오전 8시 30분경 홍경식과 함께 경성부 청진동(淸進洞) 민용호(閔溶鎬)의 집에서 독립운동자금 200원을 모집하였다. 전남경찰부에서는 전남지역의 부호들에게 독립운동자금을 의연하라는 문서가 우송되는 상황을 파악하고 1924년 11월 초 자금을 가져오라는 장소인 서울 안국동(安國洞)에 경부(警部) 1명, 형사 1명을 잠복시켰다. 이에 경기도경찰부에서도 합세하여 김동삼의 밀사가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상황 파악에 나섰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경기도경찰부 형사과장 김태석(金泰錫)이 조선극장(朝鮮劇場)에 공연을 보러 갔다가 홍경식을 발견하고 이들의 근거지를 파악하여 체포에 나섰다. 1924년 11월 10일 새벽 홍제동에서 홍경식·유한기·박정양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과 함께 활동하던 김장식은 경상북도 안동(安東)으로, 현익철은 간도로 피신하였다. 일제 경찰에게 조사를 받고 1924년 11월 19일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 넘겨졌다.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서는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강도죄, 공갈죄로 재판에 회부하였다. 1925년 5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7년 징역 7년 6월로, 1928년 징역 5년 7월로 감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최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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