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範模
範模1877 ~ 1924. 4. 2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의군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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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 송북면(宋北面) 용포리(龍浦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77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이직(李稷·李直)을 사용하였다. 일찍이 중국 옌지현(延吉縣) 지인사(志仁社) 의란(依蘭) 위자구(葦子溝)로 이주하여, 옌지현 평강사(平崗社)에 거주하였다. 창의단(倡義團)과 의군단(義軍團)에서 활동하였다. 이범윤(李範允)의 부하로 활동하던 중 1919년 7월에 의병계열과 국민의회파를 중심으로 한 무장 독립운동단체 창의단을 조직하여 단장이 되었다. 만주 북간도와 함북 무산(茂山)을 중심으로 군자금을 모집하고 지사사무장을 임명하는 등 조직을 이끌었다. 한편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북간도에서 조직된 의군단의 서지방부장(西地方部長)으로도 활동하였다. 의군단은 의군부(義軍府) 또는 의군산포대(義軍山砲隊)라 불리기도 하였는데, 1920년 봉오동 전투 이후 근거지를 왕칭현(汪淸縣) 초모정자(草帽頂子)에서 왕칭현 명월구(明月溝)로 이전하면서 활동의 중심지도 변하였다. 1921년 5월 옌지현 수신향(守信鄕) 사도구(四道溝) 오지에서 32명의 동지들과 함께 30여 정의 장총을 발견하여 안투현(安圖縣)의 독립운동단체에 인계하였다. 이처럼 항일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다가 1922년 간도 삼도구(三道溝)에서 붙잡혀 옥고를 겪던 중 1924년 4월 22일 일본영사관 경찰서 안 유치장에서 “내 적수에 피금(被擒)되어 구차하게 명(命)을 이어가느니 죽느니만 못하다.”라는 말을 남기고 단도(短刀)로 자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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