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根昌
根昌1916. 9. 20 ~ 1944. 1.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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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2) 1916년 9월 20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광적면(廣積面) 우고리(遇古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고길(李高吉)이며,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송산고길(松山高吉)을 썼다. 1941년 9월 경성부(京城府) 봉래정(蓬萊町) 소재 조선무선공학강습회(朝鮮無線工學講習會)를 졸업한 뒤, 1942년 2월 6일 조선방송협회 사업부 보수과에 입사하여 기술원으로 근무하였다. 1942년 당시는 일제의 방송통제로 해외 정보가 차단되어 태평양전쟁의 상황이나 해외 독립운동의 사정을 알 수가 없었다. 일제는 불리한 전황을 숨기기 위해 해외 방송을 철저히 금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방송을 밀청한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1942년 2월경 경성부 봉래정의 김종호(金鍾浩) 하숙집에서 단파수신기로 해외방송을 들었으며, 그해 5월경 조선방송협회 사업부 보수과 검정실에서 같은 부서 소속 신상운(申相雲)의 단파수신기로 여러 차례 외국 방송을 청취하였다. 이후 같은 해 12월 1일부터 5일경까지 보수과에서 야근 중, 함께 야근 중인 홍근호(洪瑾鎬)·김안방(金安邦)·김건이(金健二) 등과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국어 방송을 청취하며 국제정세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대략적인 방송 내용은 “조선 동포들아, 이번의 세계대전은 물자가 풍부하고 병기도 우수함으로 장기전이라면 차츰 유리하며 최후의 승리는 미영 연합국 측에 있다. … 이번 전쟁이 미영 연합국의 승리로 종료되면 미영 연합국은 반드시 조선을 독립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미영 연합군은 항공모함·전함을 기간으로 한 대함대(大艦隊)로써 일거에 일본 본토를 공략할 준비 중이지만, 연합군이 일본 본토를 공략할 때에 조선에도 상륙과 함께 비행기로써 조선 동포에 대하여 병기 및 탄약을 공급할 것이므로 조선 동포는 이를 사용하여 연합군과 긴밀히 연락하여 일거에 내란을 일으켜 철도 및 군수창고의 파괴, 전신전화의 절단 등을 감행하여 연합군을 승리로 이끌고 조선의 독립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된다”였다. 위와 같은 내용을 경성부 성북정(城北町)에 거주하는 조선방송협회 회원인 김병욱(金炳昱)에게 전달하고, 12월 중순경에는 보수과 상담소에서 같은 부서원인 고득제(高得濟)에게, 1943년 2월 20일경 경성부 성북정에 거주하는 같은 부서의 노현중(盧鉉重)에게 전달하였다. 이렇게 일제가 전쟁에서 불리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독립의식을 고취하고, 일제의 일방적인 선전을 무력화하는데 일조하였다. 이러한 해외방송 밀청사건으로 인해 1943년 7월 4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3년 9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육군형법, 해군형법, 조선임시보안령, 무선전신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1944년 1월 2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던 중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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