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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은

尹正殷

1852. 9. 8 ~ 1920.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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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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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동래(東萊)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동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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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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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52년 9월 8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구포면(龜浦面) 대리(大里, 현 부산광역시 북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이명은 윤길은(尹吉殷)이다. 1919년 구포장터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평소 일제강점기 한국의 운명을 개탄하며 울분을 드러내었으며, 구포장터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젊은 주동자들을 격려하고 지도하면서 만세시위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자임하였다. 구포장터 만세시위는 구포면 화명리 출신인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 양봉근(楊奉根)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되었다. 양봉근은 같은 동리 출신으로 구포면사무소에 서기로 근무하던 임봉래(林鳳來)를 만나 숨겨온 독립선언서를 제시하면서 구포에서도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권유하였다. 임봉래는 사립화명학교(私立華明學校) 교사인 윤경(尹涇)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고, 구포 장날인 3월 29일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27일과 28일 양일간에는 만세운동에 필요한 독립선언서와 대형 태극기, 그리고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현수막도 만들었다. 일련의 준비 작업은 밤을 새우며 진행될 정도로 은밀하면서도 치열하게 추진되었다. 3월 29일 정오 장꾼과 지역 주민 약 1,000명이 구포시장에 집결하자 시위대의 선두에서 주동자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크게 외쳤다. 이때 박덕홍(朴德弘)은 큰 태극기를 흔들고 군중을 이끌었고, 안화중(安華重)은 상인들에게 시장을 폐쇄하고 시위에 가담하라고 호소하였다. 시위 도중 김옥겸(金玉兼)을 비롯한 12명의 주동자가 일제 군경에 체포되자, 임봉래(林鳳來)·변봉엽(邊奉燁)·허정(許楨) 등과 함께 “애국동지를 석방하라”라고 외치며 구포경찰관주재소로 돌진하였다. 이를 따르는 시위대는 1,2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주먹과 몽둥이로 주재소 유리창을 깨고, 돌을 던져 기물을 파괴하였다. 이에 일제 경찰이 무차별로 발포하며 시위를 진압하여 중상자가 발생하였고, 42명의 주도자가 검거되었다. 이때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7월 19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3월을 받았다. 재판 당시 재판정에서는 앞에 놓인 책상과 의자를 걷어차면서 “너희들이 만들어 놓은 법에 내가 왜 재판을 받아야 하느냐”라며 호통을 쳤다. 옥고를 겪던 중, 1920년 1월 19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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