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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섭

尹貞燮

186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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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윤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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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성천(成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성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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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성천읍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평안남도 성천군(成川郡) 통선면(通仙面) 용담리(龍潭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53세이므로 1867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평안남도 성천군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성천군 만세시위는 초기부터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2월 하순 평양에서 열린 천도교 대교구장회의에 참석했던 이돈하(李燉夏)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온 것이 시작이었다. 이돈하는 성천군 내 각지의 천도교도를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하고는, 3월 4일을 거사일로 잡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는 등 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4일 오전 10시 무렵 성천군 읍내의 천도교당 앞에 400여 명의 주민들이 집결하였다. 주민들은 준비된 독립선언서를 배부하는 한편,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였는데, 이 때 시위대에 합류하여 만세를 외쳤다. 시위대의 규모는 점점 커져서, 일제 헌병 추산 1,000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주민들을 이끌고 앞장서서 읍내 상부리(上部里) 동명관(東明舘) 앞 헌병분대(憲兵分隊)를 목표로 나아갔다. 헌병분대에 도착한 시위대는 내부로 진입, 유리창을 깨고 집기를 부수었으며, 일제 헌병분대장을 구타하여 중상을 입혔다. 이 과정에서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여 시위대 60여 명이 사상 당하고, 397명이 체포되었다. 이때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1919년 7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해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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