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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炳善

炳善

188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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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炳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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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부(古阜)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고부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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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이성화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이성화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8) 전라북도 고부군(古阜郡) 벌미면(伐米面, 현 정읍시 정토면) 용루동(龍樓洞) 출신이다. 1909년 판결문에 당시 나이가 23세로 기록되어 있어, 1887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09년 이성화(李成化)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고부군 출신 의병장인 이성화는 1908년부터 1910년 7월 10일 전사할 때까지 수 백명 규모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전북 고부·태인(泰仁)·순창(淳昌)·부안(扶安)·정읍(井邑) 등지에서 일본군과 수십 차례 교전하며 치열하게 항일투쟁을 펼쳤다. 1909년 7월경 이성화 의병부대에서 주로 군자금 모집 활동에 참여하였다. 1909년 8월 16일에는 동료 의병 3명과 함께 양총과 죽봉으로 무장한 뒤 태인군 인곡면(仁谷面) 박산리(朴山里) 이장 김윤집(金允集)으로부터 엽전 3냥(兩)과 물품 대금 24전(錢)을 모집하였다. 이후 금구군(金溝郡) 일북면(一北面) 독화리(禿禾里) 주막에서 휴식하다가 추적해온 고부경찰서 순사들에 혼자 붙잡혔다. 특기할 만한 것은 당시 일제 경찰의 보고 문서에 따르면 고부군 벌미면 북산리(北山里)의 일진회원(一進會員)이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진회와의 관계에 대한 다른 기록이 없다는 점에서 잘못된 보고이거나 체포를 모면하고자 일진회원으로 위장 진술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정확한 내용은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다. 이 일로 1909년 9월 6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1912년 9월 13일 ‘은사에 관한 조서’에 의해 형 집행 면제를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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