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문
尹成文1886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후기의병(경북 신녕)
포상 정보
- · 애국장(201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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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7) 경상북도 신녕군(新寧郡) 신촌면(新村面) 신거동(新擧洞, 현 영천시 화북면 일대) 출신이다. 1908년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나이가 23세로, 1886년생으로 추정된다. 1908년 (음)2월부터 3월까지 신녕군과 청송군(靑松郡)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으로 광무황제(고종)가 강제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 군대도 강제 해산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항쟁이 일어나던 때였다. 참여했던 활동한 의병부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다만 활동 시기와 시점을 근거로 추정해보면 당시 청송 지역 인근에서 활동했던 의병부대로는 태백산 호랑이로 유명한 신돌석(申乭石) 의병부대를 비롯하여 강진선(姜進善) 의병부대, 서종락(徐鍾洛) 의병부대, 남석우(南錫佑) 의병부대 등이 있었다. 이들 중 한 의병부대에 참여하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나, 기록으로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이처럼 소속을 알기 어려운 의병이 다수 존재하는 것은 경북지역 의병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곧 경북지역 의병들은 산간지대가 많다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대개 소규모로 게릴라식 활동을 벌였기에 구체적인 자취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08년 (음)2월, 자신의 마을에 찾아온 소속 미상의 어떤 의병의 권유를 받아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의병부대에 들어가서는 전투 외에도 주로 군수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08년 3월 10일에는 동료 의병 강봉익(姜奉益)·김명서(金明瑞)와 함께 신녕군에 있는 민가에서 돈 10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3월 말에는 청송군 장전동(長田洞, 현 안덕면 장전리)에 머물고 있는 동료 의병 수백 명과 함께 음식물과 짚신 등을 모집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로 인해 1908년 10월 9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 살인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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