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元寧
元1864. 1. 15 ~ 1932. 11.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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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3) 1864년 1월 15일 경상북도 상주군(尙州郡) 화북면(化北面) 하오[(下五), 현 상오리(上五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원영(李元永)·이만녕(李萬寧)이다. 1912년 3월 이용규(李容珪) 등 뜻있는 인사들과 더불어 국내의 일본인을 몰아 내려는 의거 계획에 참여하였다. 1910년 8월 일본에 의해 강제 병탄을 당한 국가적 치욕에 분노하여, 1911년 10월 이용규는 충북 옥천(沃川)에서 의병을 일으키고자 전 승지(承旨) 노병직(盧秉稷)과 전 참의(參議) 장남기(張南基) 등과 의논하였다. 1912년 (음)1월 27일 장남기가 국권을 회복하자는 계획을 세우고 손진형(孫晋衡) 등을 만나 일본인을 물리치고 국권을 회복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이의 실행에 앞서 산천에 제사를 지낼 비용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였다. 1912년 (음)2월 10일 충북 영동(永同)·황간(黃澗)을 거쳐 화북면 동관음동[(東觀音洞), 현 동관리(東觀里)]로 온 이용규와 함께 장남기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용규·손진형·이충헌(李忠憲)·이창희(李昌熙)·권호(權浩)·남태진(南台鎭)·박병근(朴秉根) 등과 같이 계획을 논의한 이후, 단(壇)을 쌓아 산천에 기원(祈願)하고 천지(天地)에 고(告)하였다. 이용규가 축사(祝辭)를 한 다음 각자 임무를 맡고 떠났다. 이후 이 계획을 탐지한 공주경찰서 소속 일제 경찰들에게 관련된 30여 명과 함께 붙잡혔고, 이용규는 같은 해 (음)4월 6일 서울 삼청동(三淸洞)에서 체포되었다. 이 일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1912년 9월 28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면소(免訴)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붙잡힌 이후부터 약 7개월 동안 옥고를 겪었고, 이 과정에서 얻은 후유증으로 풀려난 이후에도 계속 고통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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