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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純久

純久

1884. 1. 15 ~ 1972.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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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純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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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慶州)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경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산남의병부대(산남의진)
  • · 광복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중기의병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4년 1월 15일 경상북도 경주(慶州) 강동면(江東面) 양동리(良洞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강(驪江)이고, 자는 성희(聖熙)이며, 호는 환암(環菴)이다. 산남의병부대(山南義兵)의 부장(副長) 겸 중군장(中軍將)으로 활동한 지포(芝圃) 이한구(李韓久)의 동생이다. 1906년 3월 경북 영천(永川)에서 정용기(鄭鏞基)를 대장으로 추대하고 산남의병부대를 결성할 때 형과 함께 참여해 통신 업무를 맡았고, 정탐에도 재능이 있어 각 지역으로 암행하며 정찰 활동을 벌였다. 또한 사실을 기록하는 일에도 민첩하여 사건들을 일일이 기록하고 이를 정리해 보관하였는데, 그 내용이 산남의병부대의 일기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한다. 산남의병부대가 각 부대별로 분산 배치되어 작전을 전개하다가, 1907년 10월 영일군 죽장면(竹長面) 입암(立巖)에서 벌어진 일본군 영천수비대와의 전투에서 대장 정용기, 참모장 손영각(孫永珏), 중군장 이한구 등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후 정용기의 부친 정환직(鄭煥直)이 의병부대를 수습하고 2대 의병장으로 부대를 이끌 때 그 막하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정환직 대장이 1907년 12월 20일 영천에서 사망하자, 산남의병부대는 영천 보현산(普賢山) 거동사(巨洞寺)에서 1908년 2월 3일 최세윤(崔世允)을 재차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의병부대를 개편해 본부를 남동대산으로 옮겼다. 그 뒤 본영을 제외하고 보현산에 이세기(李世紀), 팔공산에 우재룡(禹在龍), 주왕산에 서종락(徐鍾洛) 등 여러 부장들을 각 지역의 유격장으로 임명하고 활동하도록 하였다. 이때 주왕산을 포함한 청송지역에서 활약하던 서종락 의병부대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1908년 의성(義城) 구봉산(九峰山)에서 일본군 토벌대와 교전하던 중 다리에 총상을 입고 불구의 몸으로 귀향하였다. 이후 일제 군경의 탄압과 감시를 피해 가족들을 데리고 만주로 떠났고, 1912년 판시현(盤石縣)에서 이상룡(李相龍)을 만났다. 이후 산남의병부대의 선봉장이었던 우재룡의 소개로 광복회(光復會)에 가입하였다. 1915년 (음)7월 15일 대구에서 결성된 광복회는 사령관 박상진(朴尙鎭), 지휘장 우재룡·권영만(權寧萬), 지부장 채기중(蔡基中) 등을 중심으로 조직을 국내 뿐만 아니라 국외까지 확대하고 있었다. 이때 박상진의 명령에 따라 중국으로 건너 와서 만주지역의 인사들과 연락하며 활동하던 우재룡의 소개로 광복회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후 일제가 만주를 장악하였을 뿐 아니라 고향에서 형과 아들 두 사람이 모두 원통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재기를 꾀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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