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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守睦

守睦

1887 ~ 1909.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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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守睦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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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英陽)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신돌석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6)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6) 자료의 한계로 정확한 출생일시는 확인되지 않는다. 1909년 작성된 자료에 나이가 23세로 기록되어 있어 1887년생으로 추정되며, 당시 경상북도 진보군(眞寶郡) 동면(東面) 화매동(花梅洞, 현 경북 영양군(英陽郡) 석보면(石保面) 화매리(花梅里))에 거주하고 있었다. 신돌석 의병부대에 참여한 이후, 1909년까지 경북 영양(英陽)·영해(寧海)·영덕(盈德) 등의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외교권이 박탈되고, 1907년 7월 고종이 강제로 퇴위를 당하는 등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이 무너져 갔다. 이러한 정세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있던 중, 경북 영덕(盈德)의 신돌석(申乭石)이 1906년 3월 영해의진(寧海義陣)을 일으킨 뒤 경북 영양·울진(蔚珍)·포항(浦港)·청송(靑松) 등지에서 항일유격전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의병부대에 들어갔다. 신돌석 의병부대에서 다른 의병들과 더불어 경북·강원지역의 산간지대와 동해안 일대를 무대로 활약하며, 관아(官衙)를 장악해 무기와 군수품을 확보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1908년 12월 신돌석 의병장이 사망한 이후에도 경북 영양·영해·영덕 등지에서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1909년 8월 11일 진보군 동면 백자동(柏子洞) 산간에 위치한 집에 머물던 중 정보를 탐지한 일제 경찰의 기습 공격을 받고, 백자동 출신의 김종달(金鍾達)·청송군(靑松郡) 남면(南面) 평동(坪洞) 출신의 서고락(徐高洛)과 함께 붙잡혔다. 이때 체포되어 포박당하는 과정에서 1명이 먼저 총살되었고, 나머지 2명도 영덕경찰서(盈德警察署)로 압송되다가 영덕군 동면(東面) 주동(酒洞)의 산길을 지날 때 탈출을 꾀한다는 이유로 호송하던 일본 순사대에게 총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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