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尙潤
尙潤1898. 6. 5 ~ 1989. 3. 1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청년단연합회
- · 광복군사령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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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98년 6월 5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위화면(威化面) 하단리(下端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이상림(李尙林)을 사용하였다. 1920년 중국 지린성(吉林省) 콴뎬현(寬甸縣)에 거주하면서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 별동대원과 대한광복군총영(大韓光復軍總營)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만주 지역에도 항일운동단체의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3월 15일 지린성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유림과 의병계열 독립운동가 560여 명이 모여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조직하였다. 대한독립단은 도총재(都總裁)와 총단(總團)을 두었고, 서간도 지역 9개 현에 지단(支團)을 조직하였다. 이후 대한독립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민국파 독립단과, 복벽주의를 주창하는 기원파 독립단으로 분리되었다. 민국파 독립단은 1920년 8월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에 통합되었고, 기원독립단은 독립적인 조직을 유지하다가, 1922년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가 결성될 때 연합단체로 참여하였다. 더불어 대한독립단은 1919년 8월과 1920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국내에도 지단을 설치하기 위해 특파원을 파견하였고, 국내의 인사들과 연합하여 단원 확보와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 더불어 국내의 평안도·황해도 지역의 친일파를 암살하고, 주재소·면사무소 등을 방화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펑톈성(奉天省) 안둥현(安東縣)에서는 평북 출신 청년들을 중심으로 1919년 3월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이 결성되었으며,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면서 기관지 『반도청년보(半島靑年報)』를 발행하였다. 이후 11월 콴뎬현에서 다른 지방 청년단과 함께 대한청년단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이후 1920년 4월 2차 정기총회 이후 민국파 독립단과 통합을 추진하여, 1920년 7월 대한광복군총영을 조직하였다. 1920년 2월 대한청년단연합회 별동대원(別動隊員)으로 의주에서 강계로 이동하는 우편행랑을 습격하였고, 교전하다가 퇴각하였다. 같은 해 7월경 대한광복군총영 대원으로 의주·용천(龍川)·선천(宣川) 등의 지역에서 군자금을 모집 활동을 전개하면서 일제 경찰과 교전하고 돌아왔다. 이러한 활동을 펼치다가 1920년 10월 의주에서 동료 차연환(車蓮煥)과 함께 붙잡혔다.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8년을 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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