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斌鎬
斌鎬1861. 6. 28 ~ 1930. 2. 2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선성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1)
관련 사건
- · 전기의병(선성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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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1) 1861년 (음)6월 28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 하계(下溪)마을에서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아버지 이중팔(李中八)과 어머니 진주강씨(晋州姜氏)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眞城)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14세손이고, 하계파 10세손이며, 선성의진(宣城義陣)의 전방장(前防將) 이중언(李中彦)의 조카이다. 이명은 이빈호(李彬鎬)·이벽호(李闢鎬)이다. 1896년 3월 선성(宣城) 의병부대의 참모로 태봉전투(胎峰戰鬪)에 참전하였고, 1905년 이중언과 함께 을사늑약을 반대하는 상소운동을 전개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항거하는 의병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날 때, 경북지역에서도 이만도(李晩燾)의 선성 의병부대, 권세연(權世淵)의 안동 의병부대 등이 일어났다. 하지만 안동 의병부대가 관군의 공격으로 일시 무너지자 선성 의병부대도 해산하였다. 1896년 2월 16일 선성 의병부대의 부장(副將)이었던 이중린(李中麟)이 청량산(淸凉山)에서 해산된 의병부대를 재건해 다시 선성 의병부대가 꾸려졌다. 이때 이중엽(李中燁)과 함께 참모로 임명되었다. 그해 3월 20일 재기한 선성 의병부대는 중군장 김석교(金奭敎)에게 포정 50명을 맡겨 경북 예천(醴泉)에서 7개 고을의 의병부대가 연맹을 맺는 예천회맹(醴泉會盟)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일본군을 저지하기 위하여 3월 28일 의병부대와 함께 예천 산양(山陽)으로 이동하였으며, 3월 29일 새벽부터 이른바 태봉전투(胎封戰鬪)를 전개하였다. 선성 의병부대가 선봉에 서고, 풍기(豊基)·영주(榮州)·순흥(順興)의 의병부대 등이 뒤를 이었다. 종일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지만 일본군의 우세한 화력에 밀린 각 의병부대는 결국 부상자만 남기고 흩어졌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이에 격분한 숙부 이중언이 조약 체결에 동참한 다섯 역적의 처단을 요구하는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를 올릴 때 함께 궁궐에 나아가 상소하였다. 이 상소에서 “일본은 승냥이나 이리떼와 같은 무리이자 전통적인 원수이기 때문에 결코 상종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과 “5적은 민족과 국가의 죄인이며 만고의 역적이므로 목을 벨 것”을 주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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