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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鳳奇

鳳奇

188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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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鳳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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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康津)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강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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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황두일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황두일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고읍면(古邑面, 현재 장흥군 관산읍) 출신이다. 1910년 판결문에 당시 나이가 24세로 기록되어 있어, 1887년생으로 추정된다. 1908년 전남 해남군(海南郡) 북평면(北平面) 이진마을 출신인 황두일(黃斗一) 의병부대에 참여해 활동을 전개하였다. 황두일 의병부대는 심남일(沈南一) 의병부대에 소속되어, 주로 해남의 일진회 회원들과 일제 주차헌병대 그리고 그들의 밀정을 공격하였다. 1908년 6월 일본군은 전국적으로 4,000여 명의 조선인 헌병보조원을 뽑아 일제 헌병의 앞잡이로 사용하였다. 농민 출신 의병인 박화선(朴化仙)·강자선(姜自仙)과 함께 소조(小組)를 꾸려 황두일 의병부대의 활동을 관헌에게 밀고한 송종면(松終面, 현 해남군 삼마동(三馬洞)에 거주하는 최덕관(崔德寬)을 처단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1908년 (음)12월 23일경 여러 의병들과 협의해 강 아무개를 부장으로 추대하였다. 24일 새벽 박화선·강자선 등과 함께 최덕관의 집으로 찾아가 결박하고, 그를 마을 앞쪽의 밭으로 끌고가 처단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0년 3월 19일 광주지방재판소 목포지부에서 이른바 모살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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