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중
尹元中1872 ~ 1909. 10. 15
관련 단체
- · 후기의병(전남 담양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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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자료에 따르면 1909년 당시 38세로 1872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확인할 수 없다. 1909년 전라남도 담양(潭陽)에서 의병장으로 의병부대를 이끌면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05년 대한제국은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겼다.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으로 광무황제(고종)가 강제로 퇴위되었고, 같은 해 7월 24일 강압적으로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리고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었다. 한 달여 만에 이러한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하자, 전국의 의병들은 다시 한 번 봉기하였다. 이때 해산 군인들이 각지의 의병부대에 가담하고, 의병들에게 신식무기와 군사훈련법을 전수하였다. 이는 침체되었던 의병항쟁을 재점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1907년 이후 전라도에서는 기삼연(奇參衍)·고광순(高光洵) 등의 의병장들이 대규모 의병부대를 이끌고 활약하였으며, 크고 작은 의병부대도 호남 여러 지역에서 봉기하였다. 자료의 한계로 정확한 시기와 지역은 확인할 수 없지만, 의병장으로 활약하며 직접 의병부대를 이끌었다. 1909년 10월 15일 전남 담양에서 의병장으로서 부하 15명을 이끌고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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