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채
尹榮采1886. 3. 5 ~ 1908. 4. 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후기의병(안규홍)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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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86년 3월 5일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산포면(山浦面) 신도리(新道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字)는 효원(孝源), 호(號)는 설송(雪松)이다. 어려서는 아이들과의 전쟁놀이를 즐겨하였고, 장성해서는 글에 능하고 손자의 병서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을사늑약 이후에는 칼을 소지하고 집을 떠나 돌아다니다가 전남 보성(寶城)에서 안규홍(安圭洪)을 만나 의기투합하였다. 1908년 의병장 안규홍 의병부대에 동참하여 항일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안규홍은 본래 머슴 출신으로서 의병을 일으킨 대표적 평민의병장으로 전남 보성 일대에서 활약하면서 1908년 2월의 파청대첩(巴靑大捷, 현 보성군 득량면 예당리), 같은 해 8월의 진산대첩(眞山大捷, 현 보성군 문덕면 귀산리), 1909년 3월의 원봉대첩(圓峰大捷, 현 보성군 보성읍 원봉리)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안규홍이 의병부대를 일으킬 때 서기(書記)를 맡아 격문 작성 등을 주관하였고, 이후 다시 선봉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보성 근교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승리를 거둔 파청대첩에서 별동대를 이끌어 포위작전을 펼쳤다. 이후 보성 지역의 지리를 잘 알아 일본군의 진격로에 복병을 두어 습격하는 등 여러 차례 전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1908년 (음)4월 3일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대원사(大院寺)에서 벌어진 일본군과의 전투 도중 사망하였다. 한편, 안규홍 의병장의 행적을 기록한 『담산실기』의 「담산실기추록(澹山實記追錄)」에는 안규홍과 대원사를 공격한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같은 해 8월 24일 총격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안규홍이 손수 시신을 거두어 절문 밖에 가매장한 후 사람을 시켜 본가에 알려 가족이 나주 산포 초변촌(草邊村) 뒤 자좌원(子坐原)에 반장(返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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