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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옥

尹永玉

1880 ~ 1909.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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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윤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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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관련 단체

  • · 후기의병(이순안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3) 일제 보고문서에 따르면 1909년 당시 나이가 29세로 1880년생으로 추정된다.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월산면(月山面) 월평리(月坪里)에 거주하였고, 직업은 의사(醫師)였다. 1908년 이후 이순안 의병부대에 소속되어 담양 일대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05년 대한제국은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겼다. 1907년에는 헤이그특사사건혅을 빌미로 광무황제가 강제로 퇴위당하였다. 같은 해 7월 24일 일제는 대한제국과 강압적으로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일본인 통감이 내정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협약 체결 이후인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였다. 이에 대한제국 해산 군인들과 산악 지역의 산포수들은 각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활동하거나 의병부대에 참여하였고 의병투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러한 가운데 전남지역 의병은 여타 지역보다 더욱 활발하고 지속적으로 투쟁하였다. 기삼연(奇參衍)·심남일(沈南一)·안규홍(安圭洪) 의병부대를 중심으로 항일투쟁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시기 전남 담양 일대에서 이순안(李順安)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28세였던 1908년 9월에 일시 귀순하였지만, 1909년 다시 이순안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1909년 9월 28일 당시 집에서 담양주재소 일본 순사 등 4명과 분둔병(分屯兵)에게 붙잡혀, 다른 의병들의 동향에 대하여 자백을 강요받았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다음날인 29일 오후 11시 일제 군경에게 끌려가다가 포승줄을 끊고 탈출을 시도하였다. 다시 붙잡혔으나 월산면 월산리(月山里) 뒤편의 산기슭으로 재차 탈출을 시도하였고, 결국 일제 군경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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