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기
尹永淇1871. 6. 10 ~ 1971. 2. 2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후기의병(고광순 의병부대)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1년 6월 10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효천면(孝泉面) 노대리(老大里, 현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서 태어났다. 1907년부터 고광순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참모로 활동하였고 1919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1월 24일 창평군(昌平郡, 현 담양군 창평면)에서 의병을 일으킨 고광순(高光洵) 의병부대에 들어가 참모로 활동하였다. 고광순 의병부대는 의병을 일으킨 직후 전북 남원(南原)의 양한규(梁漢奎)로부터 연합 제의를 받았다. 이에 곧바로 남원으로 갔으나 양한규 의병부대가 와해되면서 퇴각하였다. 고광순 의병부대는 같은 해 8월 신덕균(申德均) 의병부대와 합세하여 유격전 위주의 활동을 했으며, 특히 그해 군대 해산 이후의 진위대 군인을 규합하여 1,000여 명의 의병이 지리산 화개동(花開洞) 일대를 근거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고광순은 1907년 10월 전남 구례(求禮) 연곡사(鷰谷寺)에서 광주의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 중 사망하였다. 고광순이 사망할 당시 신덕균과 의병을 모집하기 위해 나가있었기 때문에 연곡사 전투에는 참전하지 못하였다. 이후 운봉(雲峰)·함양(咸陽)·순창(淳昌)·정읍(井邑) 등지를 전전하며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1919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언문을 배포하고 신덕영(申德永) 등과 함께 광주 인근의 부호들로부터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다가, 1920년 10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5월 3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으로 징역 1년을 받고, 광주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양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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