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聖逑
聖逑1901. 11. 27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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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5) 1901년 11월 27일 평안북도 초산군(楚山郡) 성면(城面) 내연동(內淵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하는 이성구(李成逑)를 사용하였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중국 간도 지역으로 이주한 후, 펑톈성(奉天省) 콴뎬현(寬甸縣) 삼류하에서 거주하였다. 1924년 (음)7월경 관전현에 소재하고 있던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제8중대에 입대하여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통의부는 대한광복군영(大韓光復軍營)·대한정의군영(大韓正義軍營)·대한광복군총영(大韓光復軍總營) 등 8단(團) 9회(會)라고 불리는 17개 독립운동단체 대표들이 통합하여, 1922년 8월 23일 중국 펑톈성 환런현(桓仁縣) 마권자(馬圈子)에서 결성된 단체이다. 중앙부는 콴뎬현에 있었으며, 싱징(興京)·환런·지안(集安) 등 총 12개 지역에 총영(總營)이 배치되었다. 대한통의부는 결성 초기 참여 계열의 성향에 따라 중앙지도부와 의용군, 또는 각 계열별로 이원화되어 있었다. 의용군은 1922년 8월 말경 통합된 군사 조직으로 편제되었고, 1개 대대 산하에 5개 중대와 유격중대, 헌병대로 구성되었다. 활동목적은 무장활동을 통한 일제 침략기관 파괴, 친일협력자 제거, 군자금 모집, 통의부 통치권 수호 등이었다. 1924년 (음)7월 대한통의부 제8중대에 입대하여 군사교육을 받고, 1925년 (음)4월 초순경 이창식(李昌植) 등 통의부원 5명과 함께 장총 등을 소지 하고 국내로 잠입하였다. 당시 지위는 대한통의부 제8중대 이등병이었다. 같은 해 5월 1일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 학회면(鶴會面) 학상동(鶴上洞), 5월 9일 평안북도 태천군(泰川郡) 강서면(江西面) 덕평동(德坪洞) 및 강동면(江東面) 풍림동(豊林洞), 덕화동(德化洞), 암성동(岩城洞)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 과정에서 강동경찰관주재소 경찰에게 발각되어 풍림동에 있는 석우시장에서 총격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1925년 5월 18일 밤 10시경 영변군(寧邊郡) 봉산면(鳳山面) 용흥동(龍興洞)에서 대한통의부 제7중대 일등병 안선재(安善載)와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해 7월 15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강도살인죄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이에 반발하여 항소하였지만, 1925년 9월 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결국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31년 12월 3일 가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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