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瑞賢
瑞賢1900. 8. 26 ~ 1968. 2.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관련 사건
- · 대한통의부
- · 육군주만참의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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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1963) 1900년 8월 26일 평안북도 위원군(渭原郡) 숭정면(崇正面) 용연리(龍淵里)에서 태어났다.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에는 지린성(吉林省) 환런현(桓仁縣) 이차구(里次溝)에 거주하였다. 이명은 이광하(李光夏)·(李廣夏), 이세현(李世賢)이다. 1923년 대한통의부에 참여한 이후, 1926년 1월 육군주만참의부 제2중대 부사(副士)로 활동하였다. 1923년 만주로 이주하여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이하 통의부)에 참여하였다. 통의부는 남만주에서 활동하던 여러 독립운동단체가 통합하여 조직된 단체이다. 통의부는 조직 당시부터 공화주의 계열과 복벽주의 계열 사이의 문제가 내재되어 있었고, 군사력을 지휘하는 문제까지 더해져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결국 1923년 2월 복벽주의 계열이 통의부에서 이탈해 대한의군부(大韓義軍府)를 조직하였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항일무장투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1924년 4월 1일 통의부 의용군 1·2·3중대, 유격대, 독립소대 대표 78명이 모여 육군군사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 「남만 군민에게 경고함」이라는 격문과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격문에서는 통의부 내부에 “왜(倭)를 물리치려는 마음은 꿈속에서도 갖지 않고 (중략) 언제나 타인에게서 빼앗아 자기의 이익으로 삼고 권력을 탐하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일삼”는 세력이 있음을 비판하였다. 선언문에서는 독립을 위해서는 단결해야 하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직할’로 활동할 것을 천명하였다. 이들은 임시정부의 직속부대임을 표명한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를 조직하였다. 1926년 1월 참의부 제2중대 부사(副士)로 활동하였다. 1927년 3월 초 동지 10여 명과 함께 무기를 휴대하고 평북 벽동군(碧潼郡) 우시면(雩時面) 우하동(雩下洞) 일제 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하여 순사 1명을 처단하고 총 4정과 탄환 200여 발을 획득하였다. 또한,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소각하였다. 이후 4차례 각지의 일제 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하여 순사 4명을 처단하고 순사 4명에 중상을 입혔으며, 장총 4정과 탄환 300여 발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가, 1927년 12월 신의주경찰서에 붙잡혔다. 이 일로 1928년 3월 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강도죄,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5월 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이후 서대문형무소로 압송되었다가 대전형무소로 이감되어 옥고를 겪었고, 광복 이후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최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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