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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瑞五

瑞五

1889. 3. 3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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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瑞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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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온성(穩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온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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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북로독군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1889년 3월 30일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온성면(穩城面) 서흥동(西興洞)에서 태어났다. 대서업(代書業)을 하였다. 1920년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에 가입한 이후, 독립운동자금을 모으고 격문 배포 등의 활동을 펼쳤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조직된 이후 북간도(北間島)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부대들은 보다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통합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1920년 5월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안무(安武)의 대한국민회 국민군(국민회군), 최진동(崔振東)의 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 등을 통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부장에 최진동·부관에 안무, 북로제1군사령부 부장에 홍범도·부관에 주건(朱建), 모연대(募捐隊) 대장에 최문무(崔文武)·이천(李千) 등이 임명되었다. 1920년 (음)7월 대한북로독군부에서 온성으로 파견된 이창수(李昌秀)로부터 재무과(財務課) 과장 선임장(選任狀)을 받고 가입하였고, 지방 조직 임원으로 선임된 동지들에게도 이 내용을 전달하였다. 선임장에는 지방국(地方局) 국장에 유병준(兪秉濬), 경찰과 과장에 변남조(邊南朝), 경찰과 과원에 구창순(具昌順)·한석규(韓錫奎)·만동규(萬東奎), 징무과(徵務課) 과장에 조정훈(趙鼎訓), 징무과 과원에 오기준(吳琪準)·오현준(吳現準)·안태현(安泰現), 통신과 과장에 김석종(金錫宗), 통신원에 박문일(朴文一)·지창록(池昌錄)·이병송(李炳松), 인사과 과원에 안봉현(安鳳鉉)·장남극(張南極), 서기에 전도영(全道榮) 등을 임명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같은 시기 대한북로독군부로부터 군용 짚신을 모집해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자 오기준·오현준·조정훈·구창순·오봉길(吳鳳吉)·장두현(張斗鉉)·우동규(禹東奎) 우동규(禹東奎)(삭제) 등과 협의해 이 내용에 따르기로 결정하고, 1개당 50전씩 구입하기로 예상하고(삭제) 필요한 자금을 모집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온성면 서흥동(西興洞) 지성손(池聖孫)에게 1원, 최증축(崔曾丑)·이병옥(李秉玉)과 박봉길(朴鳳吉) 외 10명에게 모두 11원 50전을 모집하였다. 이때 오기준·오봉길과 기타 사람들도 모집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총 120원을 모금하였다. 이어서 오기준의 지인인 이용주(李容周)에게 위탁해 회령(會寧) 온평상회(溫平商會) 직원 최문규(崔汶奎)를 통해 짚신 300켤레를 구매하도록 하였다. 9월 초순경 오기준과 구매한 짚신을 수령해 장두환에게 주고 독군부로 보내게 하였다. 이때 우동규의 명령을 받은 안태현은 온성군 영와면(永瓦面) 면장인 최봉길(崔鳳吉)에게 독군부에서 사용할 짚신 모집을 권유하였고, 구창순은 온성면 동화동(東和洞)의 안영권(安永權)에게 독립운동자금 제공을 요청하여 20원을 모집해 우동규에게 독군부로 송부하라며 전달하였다. 한편, 1920년 (음)7월 말 자택에서 우동규가 이창수로부터 전달받은 대한북로독군부 부장 최진동 명의의 선유문(宣諭文)을 받았다. 그리고 내용을 확인한 이후 (음)8월 구영한(具永漢)의 집에서 오기준·오현준·전도영·안태현·박종욱·우동규와 함께 만나 선유문을 인쇄·배포할 계획을 세웠다. 선유문은 “조선을 독립하기 위하여 독립군은 대원을 모집하고 훈련하고 있으니 조선 내 동포는 일치 협력하여 일본을 배척하고 조선 독립을 도모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안태현·전도영·우동규 등과 함께 오범길(吳範吉)의 집에서 등사판으로 선유문 20장을 인쇄하여 온성군 영와면장 최봉길 등 수명에게 배포하였다. 이 일로 1920년 10월 온성경찰서에 붙잡혔고,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예심을 받았다. 1921년 6월 28일 예심이 종결되었고, 같은 해 9월 28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12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청진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3년 2월 18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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