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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尙泰

尙泰

186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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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尙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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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 · 북로군정서)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3) 자료에 따르면 1920년 당시 나이가 56세인 것으로 보아 1865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중국 간도지역으로 이주해 지린성(吉林省) 왕칭현(汪淸縣) 춘명사(春明社) 중경리(仲慶里)에서 거주하였다. 이명으로 호범(虎範)을 사용하였다. 1919년부터 1920년까지 왕칭현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고, 1921년에는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경신분국(警信分局)의 제4과장으로 항일활동을 지속하였다. 1919년 가을부터 1920년 3월까지 왕칭현 춘명사에서 양전언(梁荃彦)·서정학(徐正學)·소명오(蘇明五)·한승묵(韓承默) 등이 독립자금 마련을 위한 기부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벌이자, 자금모집 징수위원 혹은 권유위원으로 천거되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 결과 춘명사에 거주하던 820호(戶) 가운데 대부분의 집에서 독립자금을 모집하였다. 이는 지역에서 상당한 명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거주지에서 뿐만 아니라, 이도구(二道溝)로 파견되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다. 1921년에는 대한군정서 경신분국 제4과장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대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수립된 대한군정서는 청산리전투의 주력부대였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군정서의 일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시기와 청산리전투 참여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종의 정보연락 기관 역할을 하는 경신분국 제4과장으로서의 주된 업무가 본부와의 통신, 민정시찰, 일제 군경의 동향 파악, 군사상 비밀 업무 전달 등과 같은 일이었기 때문에 일제 군경의 동향을 파악하며 독립군 군자금 모집 활동도 지속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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